[달구벌아침] 시간 (Ⅰ)
[달구벌아침] 시간 (Ⅰ)
  • 승인 2023.06.1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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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옮긴 직장에 일이 전 직장보다 두 배 많아서 밀리지 않게 처리하다보면 하루가 금방 간다.

일주일도 잘 가고, 벌써 네 달이나 지났다. 시간이 잘 가니 지루할 틈도 없고, 일 이외의 사람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 좋다. 일은 매뉴얼을 찾아 그대로 처리하면 된다. 복잡한 것도 처리하는 기준은 단순하다. 그 상황에 해당하는 매뉴얼을 찾으면 된다. 시간이 잘 가서 좋다고 하니 시간이 잘 가면 “빨리 늙는다”고 안 좋다고 우스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의 남은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해야할 일들로 채우다보면 직장일을 끝내고 정년퇴직을 할 때 나는 만60이라는 나이가 들어있을 것이다. 하루하루 밀리지 않게 야근도 하고, 주말에도 가끔 떠나지 않는 직장일들로 나의 시간을 쓴다. 좀 더 즐겁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현재 닥친 일들로 하루하루가 짧고 육체적, 정시적 피로감이 쌓여 일이 없을 때는 쉬어야 한다. 일과 쉼 두 가지로 나의 시간은 흘러간다.

어릴 때도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일상이 바빴다. 학교를 갔다 집에 오면 빈 집이었다. 빈 집의 적막함이 마당을 들어설 때부터 훅 얼굴을 할퀴었다. 적막함에지지 않기 위해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했다. 못둑길이 시작되면 집이 가까워지고 홍희가 막닥뜨려야할 마당의 공허함이 두려웠다. 그 나이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정체를 알지 못했다. 그냥 가슴이 두근거리고 침이 자꾸 생겼고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나오는 것 같기도 했지만 울면 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울음이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형체도 없는 그 것과 싸우기 위해 자신과 먼저 싸워야했다. 점심이나 저녁때에 못둑에 모여드는 어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떠올리고 불어오는 바람에 상쾌함에 젖기도 했다. 못둑에 핀 보라색 제비꽃에서 기쁨을 발견하고 위로를 받기도 했다. 못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물고기가 뿜어내는 뽀글거림과 원형물결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찾았다.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만 가득하면 될 터인 어린 나이인데 집에 도착하기 전에 미리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홍희의 알 수 없는 긴장감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늘 긴장하고 뭔가를 대비해야할 것 같은 하루하루의 시작점이 그 날이었을까?

빈 집 흙마당, 흙벽에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마당한가운데를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어지러움과 메스껴움을 동시에 느끼며 금방 숨이 멎을 것 같은 빈 집의 공포. 그걸 이겨내기 위해 크게 소리를 내본다. 방문을 세게 열고 가방을 휙 던진다. 나쁜 기운을 날리려 노래를 불러본다. 아랫방의 tv를 문앞으로 꺼내서 틀어 놓는다. 빈 집, 빈 마을, 우주가 텅 비어있는 것같은 느낌. 홍희의 귀가는 이 느낌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 동안은 작은오빠가 있어서 집이 비어있지 않았다. 1년후 작은오빠는 고등학생이 되어 대구로 떠나갔다. 큰방 부엌에서 홍희가 불을 때서 밥을 하면서 아랫방 소죽을 끓이던 오빠가 있어 안심하고, 흘끗흘끗 보곤 했는데 작은오빠가 없는 빈 집이 너무 컸다.

편안하고 안전할 수 없는 시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의 시간은 늘 비어있었고, 싸우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깔깔거리고 웃고 친구들과 수다떨고 놀아야 할 열 두 살의 시간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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