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산속
조그만 연못 위로 바람이 지나갑니다
버들은 춤추고
갈대가 눈을 뜹니다
오리 몇 마리,
온갖 색이 뒤섞인 못물과 함께
남충모의 그림 속으로 날아갑니다
그림 밖에는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쌓는데
누군가 올 것 같은
이승의 산길은
못물 위에 말없이 얼비칩니다
이 모든 풍경을
오리는
천 년, 만 년 전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서종택= 197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대구시인협회 회장, 대구대학교 겸임교수, 대구시인협회상 수상. 시집 ‘보물찾기’, ‘납작바위’가 있음.
<해설> 오리는 지금 “천 년 만 년” 전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시인의 상상은 어떤 경계도 없는 따듯함 그 자체다. 시인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오리의 눈을 빌려서 볼 수도 있다는 엄청난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결국 나를 다른 사물로 바꾸어서 그 사물을 통해 세상을 읽는, 시점이동이 서정시 안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일상이, 이승을 사는 일이, 모두 신비롭게 느껴질 것이다. 어제도 보고 오늘도 보는 산책로의 연못이 어느 날은 화가의 눈에 들었다가 다시 붓끝으로 나와서 나비까지 한 마리 날리고 있다면. 그 화가의 눈을 빌려 시인은 또 한 번 변신한 연못을 본 것이다. 뻐꾸기의 눈으로 보는 연못이 이제는 연못의 눈으로 나를 보고 화가를 보는 건 아닐지.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