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조정(調整)을 모르는 행정인과 정치인들
[대구논단] 조정(調整)을 모르는 행정인과 정치인들
  • 승인 2023.06.1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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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감사원이 조직의 권한 문제로 말썽을 빚고 있다.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자 행정부의 수반으로 헌법의 규정에 따라 국가행정의 조정자의 역할을 한다. 조정(coordination)은 조직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모든 부분 활동을 통합·조화시키는 작용이다. 선관위와 감사원은 선거관리의 독특성과 특별한 감사 기능으로 중요한 국가기관의 위치에 있다. 전례가 없었던 두 기관 간의 갈등은 국민들에게 의아심을 주고 있다. 관료제의 구조적 특성 때문에 조직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기관과 부서만을 생각하고 다른 부서를 배려하지 않는 편협한 태도를 취하는 할거주의에 빠져있다.

특히 양자의 경우는 일반적인 조직 할거주의에 정치적 이념이 덮혀 있다. 전 정권에서 임명된 고위직들이 정권이 바뀌어도 잔여임기로 버티거나 독립기관임을 강조하면서 감사원의 감사까지도 회피하는 모양새는 국민들을 혼란케 한다. 선관위는 전·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에 한해 감사를 받겠다고 하고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한 전반적인 감사를 주장하다가 결국은 특혜채용 의혹만 감사하기로 결정이 난 모양인데 뭔가 찜찜하다.

선관위가 감사원 감사 대상 여부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하는데 국가기관이 조직 자체의 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석연치 않고 국가가 이런 형태로 운영돼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국민의 힘이 선관위원 전원 사퇴를 촉구하는 것도 지나친 정치적 간섭이다. 우리는 선관위원들은 매우 양식이 있는 인물로 알고 있다. 국민들 가운데는 선관위가 국가의 상설기관과는 거리가 멀고 선거 때마다 불거져 나오고 있는 행정 일탈로 친밀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선관위가 정치적으로 함몰된 부분이 있다면 그 같은 할거주의(割據主義)에서 조속히 벗어나야 한다. 자유 민주국가의 핵은 삼권분립으로 입법권은 국회에, 사법권은 법원에,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맡겨 권력의 독주를 막고 있다. 3권 가운데서 입법권이 강하게 보이는 것은 법률제정권이 국회에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인 것은 국회의 기능과 역할, 무게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수당이 의원 수로 법률을 지배하고 정부 행정을 압박하는 것은 정치행위가 아닌 정상배의 놀음이다. 헌법 정신에 일치하고 사회상규에 맞는 합리적인 정치·행정이 이뤄지고 있는지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자. 부끄럽게도 한국은 말만 무성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확고한 정치인도 행정인도 사법인도 찾기 힘들다. 3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은 집단의 이익만을 위한 관료주의·할거주의에 칩거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집단이기주의를 제어할 장치가 없거나 부족하다는 점이다. 집단이기주의에 빠져 법규를 자기편의 위주로 해석하고 올바른 공공관계(public relation)가 무시되고 있다.

야당의 법률만능주의가 정부 행정에 대한 횡포로 나타나는 일이 비일비재 하고 신선해야 할 사법부의 독립성이 고단수의 정치력에 매몰 귀착되는 현상, 행정부의 정치 조정 협상 부족 등이 중첩되어 안정적 정치 행정의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는 현상들이 정치·행정의 조정 능력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기관, 정부행정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지만 오로지 정치적 이념주의에 매몰된 정치·행정인들이 자기 독선의 늪에 빠져 정치 행정의 흐름을 방해하는 경우에는 그 어떤 조직도 조정이 쉽지 않다.

국가는 하나의 방대한 조직이다. 크고 작은 체제 모두는 관련 법규에 따라 운영된다. 말하자면 최상위법인 헌법을 위시하여 국회의 법률, 대통령령, 자치법규의 법 체제에서 정치 행정의 흐름 질서가 순조롭게 유지될 수가 있다. 조정은 공식적 조직의 법 체계에서 보다 비공식 조직의 환경 속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선 조직 후사(先 組織 後私)의 경우다. 현재 선관위의 자녀특혜 채용 의혹에 대해 감사원, 권익위, 국회의 국정조사, 경찰 수사가 계획되고 있는 것 같다.

왜 이런 소모성 현상이 나타날까. 아마도 조정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정을 조화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조정은 절대 필요하다.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국가기관의 최고관리층은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다. 조정에서 정치적 이념은 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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