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사람책’이 되어 詩 속의 인문학을 들려주다
[화요칼럼] ‘사람책’이 되어 詩 속의 인문학을 들려주다
  • 승인 2023.06.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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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문학박사
길을 가다가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 말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말한다
-토마스 칼라일


사람이 책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책 대여 활동'이 도서관, 학교, 마을 등으로 영역이 확산되면서 이용자들에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는 평을 만나게 된다. '사람책'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대신 '사람'을 빌려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인생 편린을 읽는 프로그램이다. '사람책방'은 2000년 봄, 덴마크 출신 사회운동가 로니 에버겔(Ronni Abergel)이 기획한 'Living Library'라는 뮤직 페스티벌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고 있다.

'사람책 읽기'는 경험이나 지식을 가진 사람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이해와 지식, 소통을 확대하여 편견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사람책 읽기는 한 방향 소통이 아닌, 서로 공감하고, 함께 호흡하고, 감정을 공유하는 읽기이다.

지역에서는 '용학이네 사람책방'의 대여 활동이 활발하다. 나도 사람책으로 대여된 경험이 있다. 그후의 근황이 궁금했는지 얼마 전 몇 가지 질문을 받았다. 내가 사람책방 강연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인생살이가 버거울 때마다 손 내밀어준 시(詩)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좋은 시 한 편은 깜깜한 밤하늘에서 홀로 반짝이는 한 개의 별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해질녘, 서쪽 하늘에 제일 먼저 나와서 반짝이던 개밥바라기별을 본 적 있는가? 별은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떠서 반짝일 뿐이지만, 그 별을 만난 사람은 하루의 일상에서 지친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둡던 마음이 환해지며, 꽉 다물었던 입가에 미소가 돌고 '아! 좋다'라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좋은 시 한 편이 그렇다. 시적화자의 깊고 조용한 목소리에 삶의 무게가 내려지고 마음이 맑아진다. 소리없이 건네는 시의 따뜻한 위로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희망으로 충전된다. 이렇게 절망을 이길 수 있는 힘, 시가 지닌 치유의 에너지로 한 동안을 견디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용학이네 사람책방'에서 한 권의 책이 된 후 벌써 열 손가락이 접히는 계절이 흘러갔다. 강연 제목조차 가물가물해 강연 제목을 검색해 보았다. '인문학 속의 시, 시속의 인문학'이다. 주제가 너무 거창했나? 민망하기도 했는데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분류한다면, 도서관에서 만난 사람들의 눈빛은 깊었다. 그들은 간단한 대화는 눈으로 나누었다. 목소리는 조용하고 나긋했으며, 손에는 늘 책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림자의 문양마저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인문학도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인문학 속의 시, 시속의 인문학'은 일상이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인문학 속에 숨은 시의 재발견이었다.

예로부터 인문학의 대표적인 분야를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이라고 일컬었다. 문학은 인간 삶의 이야기를 통해 존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역사는 인간의 발자취를 살펴 살아갈 방도를 들여다보게 해주고, 철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색하게 한다. 인문학이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학이라면, 인문학의 정수는 시이다. 시속의 인문학은 삶을 한층 풍요롭게 한다.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던 것을 찾게 하고, 소리없는 소리를 듣게 하고,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간 것, 그리고 지금의 소중한 것들을 발견한 심안(心眼)이 시이다.

 '용학이네 사람책방'에서 나도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대여되었다는 사실은 즐거운 기억이다. 어린 시절 틈만 나면 신작로 만화방을 찾던 때가 있었다. 고령치과와 신발가게 사이에 있는 만화방 문을 열고 구리빛 동전 한두 개를 건네면 만화책 5권을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골라 읽기도 했지만, 좋아하는 책을 열 번, 스무 번이고 손때를 묻혀가며 읽는 일이 더 많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에 빠져있다가 깜짝 놀라 책장을 덮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나는 주인공의 명대사를 조곤조곤 외며 걷기도 했으리라.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나의 작품도, 나의 시낭송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나의 활동 영역은 시기별로 다르지만 어린이, 어머니, 청소년. 대학생, 결혼이주여성과, 다문화가정 어린이, 문화예술인 등이 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초고령화로 접어들 우리나라의 노년기 세대를 위한 치매 예방과 성공적 노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느리지만 꽃피우고 가꾸어가는 삶의 자락을 나누고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가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과 성숙, 더 나아가 자존을 수확하며 발효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협력하는 사회적 자원이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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