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 체육공원 숲속 할머니 몇 모여
흘러간 노래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한 사람이 추억을 노래하면 또 다른 삶이
장단을 맞추며 불우를 노래하는데
윤기 없는 목소리는 나뭇가지에 걸려 펄럭이고
무료한 시간을 이기지 못해 가볍게 몸 비트는 나무들
초록 잎새 사이로 빠져나가는 무심한 세월
오갈 데 없고 기댈 데 없는 몸들이
쓸쓸함에 기대 문득 서로를 쳐다보며
저만치 가버린 세월을 노래하거니
덤불 속 그들이 언젠가는 들어가야 할
봉긋한 무덤가를 하얗게 물들이며
시야를 가득 메우는 한 무리의 찔레꽃.
◇박영호= 대구 출생. 경북의대 졸업(외과 전문의). 1992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대구시인협회 회장 역임. 시집 ‘산길에서 중얼거리다’, ‘바람에게 길을 묻다’가 있음.
<해설> 직업이 의사이기도 한 시인의 눈에도 찔레꽃은 피나 보다. 그냥 피는 게 아니라 한낮, 체육공원 숲속 몇 모여 흘러간 노래 구성지게 부르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핀다. 추억으로 핀다. 불우한 한 시절로 장단 맞춰 핀다. 공원의 나무들도 몸을 비트느라 한창인 지금 오갈 데 없고 기댈 데 없는 몸들이 쓸쓸함에 기대 문득 서로를 쳐다보는 그곳에 핀 찔레꽃은 그들이 들어가야 할 무덤인 걸 시인은 안다. 봉긋한 무덤가에 핀 찔레꽃들 그 고결함은 이 한 편에 시에서 요즘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시인의 따듯한 심중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시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