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시간 (Ⅱ)-할머니와의 아침
[달구벌아침] 시간 (Ⅱ)-할머니와의 아침
  • 승인 2023.06.25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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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웃음이 많은 아이였다.

아침에 일어나 할머니를 보면 배시시 웃었다. 할머니는 쭈글쭈글하고 딱딱한 손으로 홍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디서 이렇게 이쁜게 나왔노라는 말을 자주 하시는 할머니의 손길은 그 말을 대신하는 듯했다.

큰방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부엌에 있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침먹고 학교가게 세수해라. 엄마는 부엌일이 바쁜지 얼굴도 내보이지 않는다. 무심한 엄마만큼 홍희도 엄마에게 무심하다. 굳이 얼굴을 보러 부엌으로 들어가진 않는다. 놋그릇처럼 동그랗고 쇠로 된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얼굴을 씻는다.

긴 머리는 매일 감지는 않는다. 아직 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50미터 떨어진 동네 샘에서 물을 길어와서 써야 하기 때문에 물을 아껴야 한다.

엄마가 바쁠 때는 어린 홍희도 물지게를 지고가서 자신이 가져올 수 있는 만큼 물을 져 날라야 했다. 샘이 못둑 아래에 있기 때문에 경사가 45도 정도 되고, 잔디와 잡초가 자라고 있어 물이 넘쳐 흐르면 매우 미끄럽다. 조심조심 걷고 어깨에 힘을 주어야 한다. 양손은 물통 바로위를 잘 잡아야 흔들거리지 않기에 균형감각과 힘이 상당히 필요하다. 그걸 알기 때문에 물을 낭비할 수도 없고, 물을 넉넉하게 쓰지도 못한다. 굳이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물을 져나르는 힘든 일을 겪어보면 자연스레 터득된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아이들이 수돗물을 콸콸 넘치도록 틀어놓고 아무 생각없이 있는 것을 보면 물이 아깝다. 그걸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고 잠그거나 줄이지 않는 아이들이 철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근검절약은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부족하게 살면 저절도 터득되는 품성인가보다.

작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고 목을 문지든다. 머리는 물을 묻혀 정리한다. 자고일어나서 머리를 안 감았다는 표시가 나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문지른다. 어차피 마르면 표시도 나지 않는데 그래도 머리를 감은 티라도 내야 스스로가 감은 것처럼 여기기 때문었나보다. 거울을 보니 마치 머리를 감은 것처럼 물기가 흐르고 가지런하다. 며칠을 썼는지 모르는 쾨쾨한 냄새가 나는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닦아낸다. 그리고나서 할머니 앞에 엉덩이를 디밀고 앉는다.

할머니는 자신이 쓰는 참빗을 꺼낸다. 참빗은 갈색이다. 어른 손으로 움켜지면 한 손에 들어온다. 빗살이 가늘고 촘촘하다. 참빗으로 머릴 빗으면 머리카락이 매끄럽고 가지런해진다. 또 머리를 자주감지 않아 생기는 이와 씨가리를 잡아내기에도 안성마춤이었다. 가늘고 빽빽한 빗살틈보다 큰 것들이 따라나온다. 물도 귀하고 샴푸도 없던 시절이라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것들이었다.

학교 가면 선생님이 손도 검사하고 머리도 검사했다. 검사를 해서 손이 더럽고, 손톱 사이에 까만 때가 끼어있으면 회초리로 약하게 한 대씩 맞았다. 옆 친구들은 킥킥거리다가 자기 차례가 오면 웃음이 멈추고 긴장한다. 재수좋게 그날 아침 머리를 감았다거나 세수하면서 손을 깨끗하게 씻은 날은 의기양양해지기까지 하는 날이다. 홍희는 손등을 맞는 것이 싫고 부끄럽기도 하여 아침마다 손은 최대한 깨끗이 문지른다. 그래도 머리를 자주 감지 않아 생기는 이와 씨가리는 어쩔 수가 없다. 할머니 참빗으로 최대한 빗어 쓸어내리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서 참빗이 소중하고 고맙다. 할머니가 천천히 촘촘히 빗겨줄 때 안도감과 안정감을 느낀다. 할머니 앞에 앉아있는 그 순간이 불운을 막아주는 행운의 시간이다.

할머니는 쪽진 머리를 하고 있다. 긴 머리를 참빗으로 여러번 빗어 머리카락이 딱 붙고 가지런해지면 머리를 한 손으로 움켜지고 틀어올린다. 그리고 은색 비녀로 감은 머리 중간을 찔러 넣으면 머리카락이 목위로 동그랗게 뭉쳐져 있다. 옛날여자들마냥 쪽진 머리를 한 할머니는 단정하다. 자주 참빗으로 머리를 풀어 빗는다. 할머니가 머리를 감은 것은 본 적이 없다. 아마도 홍희가 학교를 가고 나서 감는가 보다.

물질적 부족함이 많은 시절이었다. 물도 불도 쌀도 돈도 넉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소한 아침의 일상이 햇살가득한 빛나는 시간들로 칼라로 색칠한 시간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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