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그리고 상상의 힘
말의 힘, 그리고 상상의 힘
  • 여인호
  • 승인 2023.06.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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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해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 어떤 일이 닥쳐도

내가 살아있는 한 너는 늘 나의 귀여운 아기”

이 구절은 로버트 먼치의 그림책 “언제까지나 너를 사랑해!”에 반복해서 나오는 후렴구이다. 부모라면 자녀를 대할 때 이와 같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를 키우다 보면 마음과 달리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온다. 그러다 보면 부모로서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말로 자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고, 자녀와의 끝도 없는 갈등으로 인해 부모 역시 상처를 받기도 한다.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 특히 부모나 양육자가 하는 말은 그 말을 듣고 성장하는 아이의 마음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뚜렷한 나이테를 남긴다.

한 방송사에서 한글날 특집으로 만든 다큐멘터리에서 보여준 실험이 있다. 그 실험 결과가 매우 놀라웠다. ‘쌀밥을 두 군데의 그릇에 퍼 놓고 4주 동안 한쪽에는 “고맙습니다”, “예쁘다” 등의 긍정적인 말을 들려주고, 다른 한쪽에는 “짜증 나”, “미워” 등의 부정적인 말을 들려준 후그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긍정적인 말을 들려준 쪽에서는 하얀색의 예쁜 곰팡이가 피고 구수한 누룩 냄새가 났지만, 부정적인 말을 들려준 쪽에서는 거무스름한 곰팡이가 피고 심한 악취를 풍기는 것이다.’

이 실험 대상이 쌀밥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실험 기간이 4주가 아닌 4년이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필자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말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고 이를 통해 학생들과 가족, 주변을 대하는 필자의 언어생활을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자녀에게 부모가 톤을 높여 ‘한 번도, 항상, 결코, 늘, 매번, 절대로 등’의 말을 사용하여 자녀에 대한 걱정의 말을 쏟아내다 보면 자녀는 스스로 반성할 시간적 여유를 갖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되어 부모를 비난하게 되고 부모와의 관계가 나빠질 것이다. 대신에 게임에 빠져있는 자녀에게 부드러운 말투로 “게임이 재미있어서 멈추기 힘들겠구나.”, “조금 쉬어 가면서 하지.” 등의 말로 요청해 보면 자녀는 “아, 내가 존중받고 있구나.”를 느껴 스스로 행동을 제지할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이제 곧 더위의 정점인 7월을 맞이하는 시기에 눈에 띄는 기사를 접했다.

경기도의 사회복지시설에서 5살 여아가 소변 실수를 했다는 이유로 옷을 갈아입히지 않은 채오랜 시간 방치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 등 신체·정신적 학대 정황이 드러났다는 기사이다. 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학대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의 앞으로의 성장에 대해 우리는 많은 우려를 하게 된다.

이 기사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겹쳐지는 책 한 권이 떠올라 소개하고자 한다. 안영달 작가의 ‘왜냐면’이란 그림책이다.

이 책에는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무심한 듯하면서도 다정한 엄마가 등장한다.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는 엄마에게 “왜?”라는 끝없이 쏟아내고 엄마 또한 아이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며 그때그때 떠오르는 대답을 툭툭 내뱉는다.

보통의 엄마라면 아이가 “엄마, 비는 왜 와요?”라는 질문을 한다면 비가 왜 내리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근거를 대어 설명을 하려고 애를 쓸 것이다. 하지만 책 속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에 펼쳐진 풍경들을 그대로 활용하여 “하늘에서 새들이 울어서 그래.” 하고 태연하게 답을 하는 상상 놀이의 단초는 꼬리에 꼬리로 이어져 아이의 호기심에 상상이란 날개를 달아 주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마침내 앞 속지에서 보여준 의문이 풀리게 된다. 유치원에서 바지에 실수를 한 행동도 엄마와 하는 상상 놀이 속에 녹아들어 가 갈등으로 이어질 부정적 요소까지 해결해 주는 가장 빛나는 결말이 아닌가 싶다.

책 속에서처럼 비가 내린다. 오늘 하루 재치 넘치는 글과 그림을 따라가 보며 쉼표 같은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강순화<아동문학가·글로벌교육재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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