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데올로기 언어, ‘괴담’
[데스크칼럼] 이데올로기 언어, ‘괴담’
  • 승인 2023.06.27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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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청 부국장
집에서 달걀이나 감자를 삶는 것은 내 담당이 됐다. 내가 삶은 달걀은 껍질이 쉽게 벗겨지고, 감자는 달콤 짭짤해 가족들이 좋아한다. 그래서 직접 삶은 감자와 달걀 앞에서 몰래 어깨에 힘을 주기도 한다. 잘 삶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니다. 그저 달걀엔 좋은 소금과 식초를 적당히, 감자는 좋은 소금과 설탕을 적당히 배합해 사용하면 된다.

소금이 떨어진 어느 날. 장 보는 길에 굵은 소금도 함께 조금 사오라고 했더니 글쎄, 소금이 없어 못 샀단다. 이해가 안됐다.

이유를 알고 보니 후쿠시마 오염 처리수 방류 임박 소식에 소금을 미리 사두려는 수요가 급증해 때 아닌 소금 품귀 현상이 빚어져서란다.

아, 또 이데올로기 언어가 정치판을 횡행하고 있구나…. 또 정치인들이 잘못된 정보로 기회주의적 목적을 추구하고 있구나….

뇌송송 구멍탁. 2008년, 벌써 15년 전이다. 광우병 파동으로 먹거리 불안은 극에 달했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광우병에 걸린 어린 소가 일어나지도 못한 채 주저앉는 장면이 끝도 없이 보도됐다. 광우병은 미량으로도 감염되고, 가열을 통해서도 병원이 잘 죽지 않으며, 광우병에 걸린 소고기 섭취나 수혈 등을 통해 인간에게도 전이될 뿐 아니라 일단 발병하면 100% 사망한다는 ‘선동’이 민심을 들끓게 했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려 죽는다’는 게 핵심이었다. 나라는 쪼개졌다. 근거 없는 괴담에 초·중·고 학생은 물론 유모차를 앞세운 주부들도 광장으로 몰렸다. TV에선 촛불을 든 이들의 모습이 종일토록 쉼 없이 송출됐고, 이들은 ‘MB 아웃’을 외쳤다.

대선 패배를 인정하고 싶지 않던 야권이 ‘반미 감정’을 자극해 여론을 선동한 이 괴담은 파죽지세로 나라를 갈라 쳤다. 일부 전문가도 여기에 가세해 ‘과학의 이름으로’ 공포를 증폭시켰다. 인간광우병이 과장됐고 허구라는 정부 발표는 미국산 소고기를 들여오기 위한 변명으로 치부됐다. 발생하지도 않은 사실을 미리 예단한 선동에 사람들은 고스란히 세뇌 당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 ‘광우병 공포’는 한 건도 현실화하지 않았다.

과학을 잠재운 이데올로기 언어는 이렇게 나라를 쪼갠다.

괴담이란 게, 사실 유별난 것이 아니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존재와 부존재 사이의 사건을 잘 가공해 말을 지어내고 포장하면 그럴듯한 스토리가 된다. 비과학적이고 비논리적인 그냥 도깨비방망이 두드리기에 불과한 이 허접한 3류 말장난이 정치에 악용되니 문제가 커진다. 괴담은 대중의 궁금증과 호기심을 숙주로 확대 재생산 되는 순간 순식간에 민심을 선동한다. 괴담을 괴담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오히려 바보가 될 정도로 사실과 거짓이 교묘히 자리를 맞바꾼다.

그래서 중요한 마디 마다 정치판에서 툭툭 튀어나온 무속 괴담이, 쥴리 괴담이, 또 생태탕 괴담이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고의 침몰설과 성형설, 천안함 미 잠수함 충돌설 같은 뜬구름 같은 말들은 아예 언론까지 가세해 거짓을 완전히 진실과 뒤바꿔 민심을 미로로 들이밀었다. 사드 기지 환경영향 평가 결과가 과학적 검증을 토대로 명확히 발표됐어도 ‘그 결과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정치 세력들은 여전히 다른 북소리에 취해 ‘괴담송 공포팔이 춤사위’를 그치지 않는다.

국민들은 다 알고 있는데도 괴담을 만든 장본인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만이 ‘백로’인양 거들먹거린다. 그것이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도 ‘아니면 말고’라면 끝이다.

대선에서 진 야권이 총선을 앞두고 이번엔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를 ‘이데올로기 언어’로 골라 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논쟁이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한 또 다른 ‘죽창가’가 아닌가 하고 묻는 일부 지성들에게 이들은 또 반지성의 뻔뻔함으로 묘한 스토리를 가득 펼쳐놓고 있다.

왜 일어나지도 않은 ‘비과학적인 불안 던지기’로 사람들을 선동하는가. 그리고 왜 이런 지저분한 ‘분열을 위한 거짓 무기’로 판을 뒤집으려 하는가.

지난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존 클라우저 박사는 “세계가 나쁜 과학, 잘못된 정보를 기회주의적 목적을 가지고 이용하는 정치인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그저 소금 걱정 없이 늘 달걀을 잘 삶을 수 있는 행복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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