늪은 만삭의 달, 자궁이다
안개가 쏟아낸 양수 속
각시붕어, 어리연꽃, 물양귀비들
옹알이로 자글자글 어둠을 깨운다
수억 년 전 이곳은 거인들의 놀이터이었다지
물 위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푸른 발자국을 찍고 다녔다지
어둡고 음습한 저 자국 아래
얼마나 많은 주술이 숨겨져 있을까
깊은 잠에서 깨어나, 녹슨 사슬 끊어
수양버들 뿌리째 뽑아
두 팔 흔들며 나올 것 같은
비밀이 스멀스멀 자라는 이곳은 우포늪이다
◇구옥남= 대구 출생. 2003 계간 ‘불교문예’ 등단. 현대불교문인협회, 대구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작가회의 회원.
<해설> 늪이 보여주는 생명력은 대단하다. 그 대단한 단면들을 세세히 엮어가면서 시인은 만삭인 자궁을 비유로 데려와 우포늪을 노래하고 있다. 물이 생명 탄생의 근원인 것처럼, 바슐라르의 상징처럼 물이 고여서 수천 년 끓고 있는 늪은, 생명체의 보고다. 안을 감추기 위해 여러 수상 식물들을 피워 철철이 다르게 얼굴을 분칠하는가 하면 물속에서는 여러 어종의 산란이 안개를 피워 올리는 늪을, 심지어는 우포늪의 기원전 거인의 역사까지도 시인은 샅샅이 훑으면서 또 다른 상상의 옷을 입히고 있다. 결국 세상의 모든 어머니 또한 늪인 것. 여성의 몸 또한 그 위대함이 늪과 다르지 않음을 이 시는 비밀스럽게 혹은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