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어디로 가오리까
[문화칼럼] 어디로 가오리까
  • 승인 2023.07.05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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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베이비부머의 상징 ‘58개띠’가 65세 대열에 접어들면서 내년이면 노년인구 1000만 시대가 열린다.

유치원이 없어지고 대신 고령층을 위한 시설 일명‘노(老)치원’으로 리모델링되는 시대다. 그리고 노인세대 뿐만 아니라 요즘 홀로 사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져서 1인 가구 1000만시대도 다가왔다고 한다. 1인 가구, 노년 인구 쌍 천만시대다.

그러다 보니 최근 이런 세태를 반영한 ‘코리빙(Co-Living)하우스’가 인기라고 한다. 일종의 쉐어하우스인데 이것의 고급버전 같은 것이다. 침실과 욕실 정도만 사적공간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주방, 서재, 운동시설 등 함께 쓰는 다양한 공용공간으로 구분되는데 한마디로 ‘따로 또 같이’다. 즉 방해받고 싶지 않지만 외로운 것은 싫어하는 1인 세대들에게 딱 맞는 공간이다. 최소한의 사적 영역은 보장받고 나머지 공용공간에서 이웃들과 함께 하는 문화에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고 한다.

코리빙하우스는 어떻게 보면 살기 좋은 도시의 전형적 모습이 거주공간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집의 사이즈를 키우는 데는 여러 가지 현실적 한계가 따른다. 따라서 사람이 인간답게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한 생활공간의 필요충분조건을 자기 집안에 마련하기는 대다수 사람에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도시인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거주함으로서 마당과 골목을 잃어버렸지만 사는 집 가까이에 작은 공원이 있어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다면 상당부분 상쇄될 수 있다. 집에 변변한 서재가 없다면 작은 도서관이나 책 읽기 좋은 분위기 있는 카페가 이웃한다면 이 역시 우리의 모자란 곳을 어느 정도 채워 줄 수 있다. 즉 사적영역을 제외한 공용공간에 이런 기능을 갖춘 것들이 촘촘히 박혀진 도시는 비록 좁은 집에 살더라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튼 홀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시대이다 보니 이런 현실을 감안한 식당문화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나 홀로 식사 손님’을 위한 맞춤형 메뉴 구성과 서로 어색한 순간이 되지 않도록 시설을 개선한 식당들이 눈에 자주 띈다. 그래서 어쩌다 혼자서 식사하는 사람들도 마음 편히 찾을 수 있는 곳이 많이 늘었다. 그리고 중국집, 분식점, 일본가정식, 설렁탕집 그리고 비빔밥 전문점 등등은 전통적으로 혼 밥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혼 밥 족들의 공통적 니즈는 집 밥 같은 것들이다. 즉 나물반찬이 잘 나오는 집, 게다가 간이 심심하면 더 좋다. 그리고 속을 든든히 채울 수 있는 양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이런 다소 이기적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대체로 한식을 기본으로 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서는 1인 메뉴가 있다하더라도 혼 밥하기에 불편한 경우가 자주 생긴다. 물론 한정식 집뿐만 아니라 많은 식당에서 혼자서 밥을 먹을 때 눈치 보일 때가 많다.

여러 나라를 다녀보았지만 혼 밥하기 가장 불편한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생각한다. 나의 기억에 그 어느 나라에서도 혼자서 밥 먹는데 눈치가 보인다거나 어색한 순간이 없었다. 인기리에 방송된 ‘고독한 미식가’는 항상 혼자가 아닌가?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 홀로 식사와 관련한 씁쓸한 경험을 종종하게 된다. 심지어 나의 경우 단골집에서 조차 혼 밥을 거절당한 적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한식이 가진 음식과 상차림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당들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한다. 나물반찬이 많은 우리음식은 정말 손이 많이 간다. 다듬고 씻고 데치고 무치고 등등 그게 다 노동력이 들어가야 되는 일이다. 한식 1인 상차림과 여러 명 상차림에 반찬 가짓수와 양에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에 혼자 떡하니 차지할 때도 있다. 그러니 주인 입장에서는 1인 손님만 계속 들어온다면 정말 울고 싶을 것 같다. 그렇다하더라도 엄연히 1인 메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부당하거나 눈치를 봐야 한다면 도대체 혼 밥 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현실적 대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시내 꽤 알려진 한식당에는 ‘1인 손님 천원 더 받습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나는 그래서 혼자서 가게 되더라도 이 식당에서는 마음이 편하다. 나 홀로 식사손님은 이제 시대의 흐름인데 늘 눈칫밥 먹는 것보다 돈을 조금 더 내더라도 마음 편히 먹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물론 추가로 돈을 더 내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나 같은 혼 밥 족들이 자기 돈 내면서 눈치를 보거나 부당한(?)대우를 받는 다는 사실은 매우 부당하다고 나는 느낀다. 파는 사람, 먹는 사람 둘 다 비교적 만족할 만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복을 짓는 마음으로 밥을 내오고 또한 편안히 먹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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