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보자기 가방
[달구벌 아침] 보자기 가방
  • 승인 2023.07.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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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란 주부
홍희는 1학년이다. 학교갈 준비를 한다. 얇은 책과 공책, 연필, 지우개가 든 필통을 챙긴다. 공책은 가로로 열칸이 있다. 한 칸 한 칸 글씨를 연필로 쓰는 느낌이 좋다. 무른 연필의 부드러운 느낌과 딱딱한 연필의 가늘게 써지는 느낌 둘 다 좋다. 빈 공책을 글씨로 메워나갈 때 공부하는 것이 즐겁다는 느낌, 글을 전혀 몰랐던 조금전의 나가 아니라 새로운 나가 되어간다는 벅찬 느낌이 공부를 즐겁게 했다.

그림으로 배우는 산수도 재미있었다. 막대기나 사과를 그려 놓아 더하거나 빼기를 하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막대기는 땅에 그리기를 하는 용도였고, 사과는 먹는 것인데 책 속에서는 만질 수도 없었고 먹지도 못했지만 더하기와 빼기는 할 수 있었다.

친구도 많이 있다. 동네에서 늘 보던 아이들이 아니라 다른 동네에 사는 아이들이 학교에 모인다. 일부러 친구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친구와 놀 수도 있는 곳이다. 또 선생님들도 있다. 농사짓는 부모님이나 동네어른들과 다르다. 일단 젊다. 옷차림도 깨끗하다. 얼굴도 깔끔하다. 말씨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점잖고 유식하다. 당연히 선생님이니까 아는 게 많다.

늦지 않게 학교에 가려고 준비물을 빨리 챙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가방을 사줘야 한다. 그런데 홍희는 가방이 없다. 가방을 사 주시지 않았다. 5학년인 작은오빠도 가방을 사주지 않았으니 홍희가 가방을 사달라고 떼를 쓸 수도 없다. 아니 떼를 쓰지를 못했다. 왜냐하면 가방을 살 돈이 없다고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가 돈이 없다고 말한 것은 아닌데 돈이 없어서 못 사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열일곱살이 된 언니가 고등학교를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고 공장에 일하러 갔기 때문이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 입학을 하는데 언니는 입학을 하지 못했다. 그로인해서인지 아버지와 엄마는 무표정이 되었다. 해가 뜨면 일하러 갔고, 해가 져도 집에 와서 뒷마무리를 하거나 가마니를 짰다. 마치 쉬는 것이 죄를 짓는 것처럼 일만 했다. 원래 말이 없던 가족은 더 말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학교에 오는 친구들이 가방을 메고 온 것이 부러워도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모두가 가방을 메고 온 것도 아니었다. 홍희만 가방이 없다면 그 이유를 들어 사달라고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가방이 있는 아이보다는 없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홍희는 책상 옆에 준비해 둔 보자기를 꺼낸다. 보자기를 방바닥에 넓게 펼친다. 가장 큰 공책을 가운데에 가지런히 놓는다. 그 위에는 책을 놓고, 그 위에 필통을 놓는다. 필통이 책보다 작기 때문에 책의 중간에 놓아야 보자기를 맬 때 덜 헐렁해진다. 쌀 때 힘을 주어 잘 싸야 학교까지 흘리지 않고 갈 수 있다. 잘못 싸면 학교 가는 중간에 보자기가 풀어져 필통이랑 책이 줄줄 흘러내려 길바닥에서 다시 싸야해서 애를 먹는다.

보자기가 찢어지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잡아당겨 가면서 말아야 한다. 한 번 말고 나서 가지런히 펴 주면서 보자기 양 쪽 끝을 잡아당겨 균형을 잡아야한다. 또다시 말아서 양쪽을 잡아당기고 반복하다보면 모서리가 남는다 그 모서리를 잘 말아 넣고 허리에 딱 붙게 고정시킨 다음 양 쪽 끝을 잡아당겨 배 쪽에서 묶는다. 힘을 잘 못 주면 묶기도 전에 필통이 떨어지고 책이 떨어져서 다시 방바닥에 보자기를 펼치는 수고를 해야했다.

자주 하면 느는 법이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도와줬지만 이제 혼자서도 척척 한다. 가냘픈 허리에 두툼한 보자기를 매면 걷기도 불편하고 뛰기는 더 어렵다. 그래도 보자기를 메고 집을 나설 때는 뿌듯하다. 보자기가 가방이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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