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토르소
[좋은 시를 찾아서] 토르소
  • 승인 2023.07.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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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령 시인

플라타너스를 보았다

물구나무선 나무 그림자

수몰된 달의 내력, 그 오래된 기억을 깁고 있을까

바람이 호수를 말아내면

분산된 시간들이 퀼트처럼 하나가 된다

한 번도 자신인 적 없던 숲에 가린 생을 떠올리며 플라타너스,

알몸으로 그 바람을 다 맞고 서 있다

오래전, 품어온 달무리 바람의 힘으로 나무를 따라 흐른다

물결은 달의 힘을 신봉하지만 달은 소리를 만든 적 없기에

명상에 잠긴 나무 그 아래, 나도

회향(廻向)의 맘, 머리 숙여 가져보는 것이다

달은 어느새 나무 그림자 속에 나를 베끼고 있다

◇이령= 201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시인하다’,‘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 편’. 저서: ‘울진대왕소나무本 발화법’, ‘시야 놀자!-초등학생을 위한 시작법’.‘문두루비법을 찾아서-Beautiful in Gyeongju’. 제10회 경주문학상, 제2회 시산맥시문학상 수상. 웹진시인광장 부주간, 동리목월기념사업회 부회장

<해설> 회향(廻向)-스스로 익힌 공덕을 자신의 깨달음을 위해서 또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위해서 향하게 하는 것, 사전적 어원이 그러하다. 플라타너스를 물구나무선 나무 그림자로 본다는 것, 수몰된 달의 오래된 내력을 나무가 깁고 있다는 것. 바람이 말아낸 호수가 퀼트라는 것. 한 번도 자신인 적 없던 숲 그 속에서 플라타너스는 토르소? 결국 ‘나’의 모습이 경주 남산의 목과 팔다리 없는 불상처럼 알몸으로 증거되고 있다. “물결은 달의 힘을 신봉하지만 달은 소리를 만든 적 없기에”라고 전제하면서 나 또한 명상하는 알몸의 나무가 되는 것이다. 달마저도 그림자 속에 든 나를 베끼고 있다는 것, 결국 토르소는 가식이 없는 실체 그 자체일 테니.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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