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하늘에 북두칠성으로 있다가 대구에 떨어진 ‘별’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하늘에 북두칠성으로 있다가 대구에 떨어진 ‘별’
  • 김종현
  • 승인 2023.07.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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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또 하나의 ‘별에서 온 그대’ 칠성바위(七星巖)
별에 대한 사람들 꿈 크고 다양
1070년 고려사에 ‘대구 운석’
“그 모양이 사립옹과 같아…”
칠성바위, 몇 차례 옮겨져
1998년 ‘대구역 광장’으로
금호강바위
금호강 삿갓바위와 칠성바위

◇스토리텔링 하기나름

삿갓 바위가 기록상 ‘신천 가운데(川中)’에 있었느냐 혹은 ‘신천 물가(川邊)’에 있었느냐를 따지는 향토사학자들의 논쟁이 있는데 이는 실상도 없는 허상을 놓고 따지고 있을 뿐이다. 이어 “별똥별이 떨어졌다면 고가의 귀금속이 있을 법이니, 운석을 찾아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이것도 과장된 집착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조족산(鳥足山)에서 신천에 내려왔다면 행정구역이 달랐기에 “물길을 막아서 피해를 보니 갖고 가라.” 혹은 “낚시 명승지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으니 반납하라.” 등의 많은 언쟁이 있었다.

후세 대구사람들은 아무런 생각 없이 개발이란 미명으로 폭약을 써 폭파해 속 시원하게 제거해 버렸다. 이에 반해서 과거 단양의 ‘도담삼봉(島潭三峯)’이 정선(旌善)에 내려왔다는 전설에 대한 문제를 단양을 어떻게 해결했나. 정도전(鄭道傳)이 해결했다는 스토리 텔링으로 중국 관광객까지 끌어들였다. 이와 같은 제갈공명의 지혜를 우리도 이용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별똥별 이야기로는, 선조21년 윤6월 24일 “온성(穩城, 함경북도 온성군) 미전진(美錢鎭)에서 올라온 장계에 의하면, ‘이번 달 2일 이경(二更)에 하나의 불덩이가 나타났는데, 그 형체가 마치 사람의 원방석에 앉은 것 같기도 하고, 활과 화살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공중을 날아 북쪽으로 향했다. 뒤이어 천둥이 쳤고, 얼음이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나고 뜨거운 바람이 사람의 낯을 데웠다.’고 하였으니, 그 변괴가 비상하다(空中浮飛向北, 隨有震雷, 如氷坼之聲, 風氣燻于人面).”고 선조실록에 기록되어 있다.

이를 스토리 텔링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별똥별이 운석(隕石)이냐 보다 ‘아름다운 미녀를 만나려’ 떨어진 사연을 소재로 남녀의 사랑을 그려서 아시아인의 혼을 뺐다. 대구도 이제는 삿갓 바위가 운석(隕石, 별동별)으로 하필이면 이곳에 떨어졌느냐? 신천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곳에 떨어졌다고 언급해야 할 때다.

◇칠성바위에 새긴 이름

2020년 12월 14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보도자료를 낸 합천군 초계면(陜川郡 草溪面)에 있는 하나의 운석구(隕石口, crater)를 보자. 이것은 5만 년 전 한반도 합천에 추락했던 운석(隕石)으로 현재 운석구 직경 4㎞로 가정할 때 지름이 약 200m 정도의 별똥별이었다. 당시 한반도는 구석기 말기에서 신석기 초기로 과도기적인 선사시대로 추정된다.

이 보도를 타고 전국에선 운석(별똥별) 찾기 바람이 불었다. 대구에서도 이전에 SNS를 중심으로 와룡산 운석구(臥龍山隕石口)가 있다고 하니 일제 당시에 조사해 분지(盆地)모양의 대형 운석구(大形隕石口, grand crater)를 찾았다 등이 난무했다. 2017년 5월 25일 대구시청(두드리소) 민원창구에 와룡산 매립장(분지)에 선사시대 운석구를 개발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개인적으로 팩트체크(fact check)를 해보고 난 뒤에 알았던 건, 사천시(泗川市) 와룡산(臥龍山, 799m)의 기사를 와룡산(臥龍山)이라는 산(지)명만 보고 착오로 와전했다.

이런 오해가 있을 만큼 별에 대한 사람들의 꿈은 다양하고 컸다. 대구에 운석이 떨어진 기록은 1070(문종24)년 1월 8일자 고려사(高麗史) 세가조(世家條)에 “별똥별이 대구에 떨어져 돌로 변했다(庚子星隕子, 大丘縣化爲石).”라고 간략하게 적혀 있다. 조선시대에선 “그 모양이 사립옹과 같았으며, 세상에 전해오는 이야기론 별똥별이 떨어져서 바위가 되었다(其形如笠, 故名之世傳星隕爲石).”고 기록했다.

하늘에 북두칠성으로 있다가 대구에 떨어진 별이 칠성바위가 되었다는 전설도 있다. 대구부읍지(1831)에는 “칠성바위가 대구도호부의 북쪽 성 밖에 있었다. 정조 때 병진(丙辰, 1796)년에 이태영(李泰永) 관찰사가 일곱 개의 바위가 ‘북두성들이 서로 껴안고 있는 것(拱北)’처럼 놓여있는 기이함을 보고 주변에 돌로 둘러 쌓고 꽃나무를 심었다.” 고 적혀 있다. 여기서 북두성의 공진(拱辰)은 유교경전 논어 위정편(論語爲政篇)에서 “덕으로 하는 정치는 북두칠성에 비유하는데 북두칠성을 중심으로 뭇별들이 서로 받들어줌(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 衆星共(拱)之)”을 덕(德)으로 서로가 감싸주면서 공존하는 이치로 봤다. 이를 맹자에서는 “비파나무가 오동나무 혹은 가래나무와도 같이 서로 껴안고 받듦(拱杷之桐梓)”을 갈파했다.

대구광역시(택민국학연구원)가 2009년에 발간한 ‘대구지명유래총람(p.420~ 422)’에는 “조선 정조 19년에서 21년까지 3년간 경상감사를 역임했던 이태영(李泰永, 1744~졸년미상)이 재직 중에 아들 7형제가 있어, 어느 날 밤 꿈에(現夢) 하늘에서 북두칠성이 광채를 내면서 북문 밖에 떨어졌다. 다음날 새벽 일찍이 그곳에 가보니 7개의 커다란 바위가 기이한 모양(拱辰圖樣)을 하고 있어 필시 좋은 징조로 여겨 7개 바위마다 7형제의 이름을 새겨 축복했다.” 고 적혀 있다. 둘째 아들 이희두(李羲斗)의 후손이 경상감사가 되어 칠성바위의 가운데 ‘의북정(依北亭)’을 지었고, 옆에 노송(老松)을 키웠다.

속설에선 칠성바위 모양에 따라 후손들이 문관 혹은 무관이 되었다. 칠성바위는 몇 차례 옮겨졌다. 기록상으로 일제강점기 공개처형장으로 사용했던 시민공회당을 1973년 시민회관으로 공개함에 따라 칠성바위를 발굴 조사하고 서측 구석에 놓았다. 1998년 4월 4일 대구역 만남의 광장(Meeting Point)으로 다시 이전할 때에 대구시 문화재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오늘날 자리에 세칭 ‘6각형 벤젠 분자구조식(hexagonal benzene molecular structure formula)’ 모양의 공진도(拱辰도) 혹은 최석정(崔錫鼎, 1646~1715) 귀갑문 구수략(龜甲文九數略)의 기준으로 배치했다.

물론 당시 경상감사가 7형제의 이름을 돌에다가 새겨 축복했던 의식은 세칭 ‘탁명의식(托名儀式)’이었다. 당시는 일반 백성들은 큰 나무나 바위에 지식들의 이름을 걸고(義巖母儀式) 큰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양반이나 관리들은 바위나 산에다가 석수장이를 동반해 자신 혹은 자식의 이름을 새겨서 대자연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축도(祝禱)했다. 대표적으로 오늘날 금강산이나 양산 통도사(通度寺) 등 명산대천의 주변을 보면 온통 새겨놓은 양반들의 이름뿐이다. 칠성바위를 현장에서 실측한 결과는 i) 바위(암질)는 청동기시대(3~4천 년 전 추정)의 고인돌로 보이는 다양한 색채를 띤 사암(변성사암 혹은 경사암)으로 봐서 여러 곳에서 모아왔고, ii) 크기(무게)에 있어 1973년도 실측과 다소 차이가 있으나, 가장 큰 붉은 사암 6.49톤(길이2.08m× 폭1.43m× 높이 1.4m× 60%× 2.6) 정도, 가장 작은 건 1.724톤(길이1.8m× 폭1.5m× 높이 0.5m× 67% × 2.6)이었다.

iii) 이름을 새김(啄名)에 있어 크기에 따라 맏아들에서 막내(7번째)까지 성명삼자(姓名三字)를 쇠정(鐵釘)과 망치로 타격해서 명각(銘刻)했다. iv)한산이씨 권지공파세보(韓山李氏權知公派世譜)를 찾아서 이태영(李泰永)의 계보(후손)를 기준으로 아들 7형제의 이름은 대조하니 본처소생(本妻所生) 아들만 명각했다. 글·그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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