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죽음을 통해 삶을 사유하다”
[달구벌 아침] “죽음을 통해 삶을 사유하다”
  • 승인 2023.08.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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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주 교사
최근 들어 허무하게 사그라져가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한다. 죽음에 대해 접하다 보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최근 '죽음학'을 강의하는 서울대 의과대학 정현채 명예교를 인터뷰를 접했다. 그는 "살아 있는 우리 모두, 죽음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현채 교수는 '죽는 게 너무 두려워' 죽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죽음에 대해 한 번 생각하자 멈출 수 없게 되고 공포와 불안으로 불면증까지 생기자, 그를 지켜보던 아내가 책 한 권을 건넸다. 미국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가 쓴 <사후생>. '죽음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로스 박사는 2만여 건의 근사 체험*을 연구한 뒤 "죽음 이후의 삶이 존재하며, 죽음은 끝이 아닌 다른 차원으로의 옮겨감"이라 결론내렸다. 정현채 교수는 <사후생>에서 경이로움을 느낀 후,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해 알고자 죽음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근사 체험 : 생물학적으로 사망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임종에 가까웠을 때 체외이탈 등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인간은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정현채 교수는 사후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째는 무(無)의 심연으로 사라진다는 시각, 두 번째는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의 세계관, 세 번째는 영혼이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는 시각이다.

그는 세 번째,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라는 쪽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현재의 삶을 더 정성껏 살게 되기도 합니다. 긴 여행에 앞서 집 안 구석구석을 정리하는 것처럼."

정현채 교수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는 독특한 의식이 하나 있다. 샤워를 하며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몇 년 전 받았던 암수술 후 아직까지 전이가 안 되고 건강하게 잘 지내는 것, 지난밤 사이 돌연사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다. 감사 기도를 마친 후엔, 샤워기의 물줄기를 밝은 빛의 폭포로 생각하는 심상화(imaging) 훈련을 한다. 마치 폭포수로 몸에 쌓인 부정적 에너지를 씻는다고 상상한다. 15분간의 이 샤워 의식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생각할수록 삶에도 더 충실하게 된다고 말한다.

"평상시 죽음을 인지하면 삶의 선택지가 간결해집니다. 죽음이 한 달 남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절실한 일에 몰두하며 일주일을 살겠죠. 일의 경중이 저절로 나눠질 겁니다. 남을 해치거나 나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누군가를 미워할 시간조차 아깝거든요. 아침에 출근하겠다고 인사하고 나간 가족이, 저녁에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는 거예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게 삶이죠. 갑작스러운 사고로 저녁에 다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저 같은 암 환자는 언제 재발할지 모르죠. 지금 이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가 없게 됩니다."

하지만 죽음은 머릿속에서 잊히기 쉽다. 그렇기에 정 교수는 매일 훈련하듯 죽음을 사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생의 매 순간 이를 상기하세요. 죽음은 끝이 아니라, 마지막 성장의 기회가 될 겁니다."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죽음을 잊지 마라' 등으로 번역되는 라틴어 문구)

최근 세계적 음악가이자 배우, 사회 운동가로서, 죽는 순간까지 사회적 관심을 가지고 작곡 활동을 이어나갔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자서전이 출간되었다. 자서전 제목은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그가 음악을 맡았던 베르톨루치 감독의 1990년작 영화 「마지막 사랑」 속 대사였다. 영화 속에서 원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우리는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무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중략) 보름달이 뜨는 것을 보는 일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아마 스무 번이려나. 그리고, 그럼에도, 무한한 횟수가 있다는 듯 생각한다."

문득문득 죽음을 접하고 죽음을 사유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좀더 견고하게 살고자 마음먹는다.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며, 나와 주변 사람들을 조금더 사랑하며. '진짜' 중요한 일에 집중할 것.

죽음을 통해 삶을 사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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