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변화의 근원, 확신
[문화칼럼] 변화의 근원, 확신
  • 승인 2023.08.0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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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얍 판 츠베덴의 베토벤과 차이콥스키》 얼마 전 있었던 서울시향 차기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 (Jaap Van Zweden)’의 서울시향과의 첫 정기공연은 이틀 내리 온 사람이 많을 만큼,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호응이 대단했다. 한편 이와 달리 이날 연주된 베토벤 교향곡 7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의 연주 내용이 좀 우려스럽다는 전문가들의 걱정도 있었다. 츠베덴을 45도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마지막 남은 단 한 장의 티켓)에서 공연을 감상 한 나는 그의 표정과 움직임을 아주 세밀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아! 이분은 흡사 무용수 같다. 아니면 때로는 그의 발놀림이 권투선수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하며 음악을 들었다. 그만큼 그는 단원들에게 격렬한(?) 요구를 했다. 그러면서 왜? 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의 군대생활 경험이 잠시 떠올랐다.

포병부대에서 근무한 나는 행정병으로 제대했지만 초반에는 포탄을 직접 쏘는 부서에서 근무했다. 지금은 시스템이 다르겠지만 당시 내가 다루던 야포는 유사시 적보다 먼저 공격하기 위해서 ‘겨늠대’라는 봉 2개를 신속, 정확히 설치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겨늠대 꽂을 자리를 동물적(?) 감각으로 찾아야 한다. 그다음 정밀한 조정을 통해 완벽히 세팅을 해야 하는데 이때 중요한 원칙, 수정 목표치를 조금씩 한 방향으로만 나가서는 늦다. 목표치를 한 번에 나아가 만약 조금 지나치면 다시 뒤로 살짝 돌아가는 방법이 훨씬 빠르다. 세상사 모든 것에 이 원칙이 통하지는 않겠지만 때로는 목적을 달성하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번 서울시향을 지휘하는 츠베덴의 모습에서 이때의 경험이 오버랩 되었다. 차기 서울시향의 음악감독으로서 그가 추구하는 음악을 찾아 이번에 표현의 극대화를 해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 음악의 본질에 어긋나는지 나로서는 알기 어렵지만 이로 인해 받는 감동이 컸다. 우선은 풍부한 표현에 자극 받지 않을 수 없었고 또한 그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단원들의 모습에서 느끼는 기쁨도 결코 작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이치 캄머 필’ 단원들의 모습이 연상 되었다. 그가 단원들을 어떤 식으로 군기를 잡았던 간에 개성강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움직이게 한 것은 그의 능력이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 확신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모습은 오랜만에 보는 신선함이다.

《제이알: 크로니클스》 예전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라는 영화를 통하여 사진이 만들어 내는 놀라운 변화를 감동적으로 본적이 있었다. 이 영화를 공동 감독한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운동의 선구자 ‘아녜스 바르다’는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또 다른 주인공 JR의 한국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찾아갔다.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하나? 사진을 다루고 있지만 사진작가라기보다는 사진을 통한 행위예술가 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아무튼 그는 분쟁지역,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 중죄수를 수용한 교도소 그리고 평범한 일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도시의 건물들을 사진으로 감싸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 낸다. 익히 알려진 루브르 피라미드 30주년 기념 ‘아나모포시스’ 외 많은 작품에서 그의 기발한 상상력과 세상의 불합리를 꾸짖는 준엄함 그리고 인간에 대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파리근교에서 태어난 JR은 어린 시절 그래피티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주운 카메라(전시장 입구에 전시된 삼성 제품-한참을 기다렸으나 끝내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로 인해 사진작업을 시작했다. 그래피티의 또 다른 형태로 그는 대형 사진을 건물에 부착함으로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탁월했다. 여기서 생긴 궁금증 하나! 사진으로 그런 작업을 위해서는 예산이 꽤나 들 터인데 그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어떻게 그것을 감당했을까? 지금도 작품 판매와 자발적 후원 외 기업협찬 등은 일절 사양한다는 그는 당시 친구들의 도움 등으로 작업을 이어나갔다는 도슨트의 전언이었다.

전시장에 적혀있는 JR의 말 “ 예술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변화하게 한다.”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그는 사진으로만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사회, 국가 간 첨예한 갈등과 분쟁의 한 가운데서 사진을 통한 다른 시선을 제시함과 아울러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개인의 다양한 의견제시를 끌어내기도 한다. 어려운 시절에도 사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JR을 만들 수 있었다.

흔히들 모자란 자의 확신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확신이 없는 자는 변화를 만들 수 없음도 확실하다. 확신을 가지고 소신껏 살아가는 이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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