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고추
풋고추
  • 승인 2023.08.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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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종일 시인
은종일

식성 닮은 누이가 풋고추를 보내왔다

탱탱하다

택배 상자를 풀자 신문지로 돌돌 말렸다

신문지를 풀자 찬물에 만 보리밥이 쏟아졌다

고추전 부칠까

아내가 내게 물었다

씹히고 씹히던 아삭함은 어디 가고

누이가 보낸 풋고추 앞에서

허술한 고추포대인 나는

풋사랑도 풋고추도 풋내 나서 싫다

빙그레 웃는다

◇은종일= 약력《문학시대》시,《한국수필》 수필,《문장》문학평론 등단. 수필집『거리』, 『재미와 의미 사이』,『춘화의 춘화』,『아린』. 시집 『사소한 자각』,『허공 도장』. 평론집『현대수필의 창작과 비평』. 박종화문학상, 대구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사)한국문인협회 이사, (사)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해설> 번뜩이는 해학이다. 풋고추가 탱탱해야 한다는 건 고추를 그만큼 좋아한다는 거다, 고추 맛을 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추로 전을 부치든지, 보리밥을 물에 말아 고추를 찍어 먹든지, 고추밭에서 따온 고추가 향이 날아가기 전에 먹는 사람은 고추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감자나 옥수수도 밭에서 수확하는 그 즉시 삶아 드셔 보시라. 이건 강원도 화전민 촌놈인 저의 지론이고. 은종일 시인은 이 상황에서 아마도 자신을 “허술한 고추포대”라고 언뜻 생각해서 아내 앞에 무심코 풋내나서 싫다! 툭 던지듯 말해 놓고 보니, 절로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는 그런 이야기인데, 너스레가 섞인 해학이다. 재미가 있다. 그러나 그 재미 너머에는 나이가 들어서 오는, 숨겨진 수컷의 어떤 비애가 예리하게 시의 바닥을 치고 있다.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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