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진한 잿빛으로 변해가며 달려왔다
마른 나무의 뿌리는 신경을 곤두세웠고 어두워진 집들은 불을 밝혔다 한낮이었다
집 없는 개와 고양이는 피할 곳을 찾아 어디론가 떠나갔고 잿빛 구름이 내 정수리 위에서 으르렁댈 때는 온통 암흑이었다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 구름은 까맣게 탄 가슴을 찢고 검은 울음을 쏟아냈다
낯선 처마 밑 늘어선 사람들은 하늘과 시계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참 동안 쏟아진 울음이 내 발목을 타고 올라왔다 모두 떠나간 후에도 흠뻑 젖은 채 서 있었다
◇오선덕= 2022년. ‘시와문화’ 등단, 시집 ‘만약에라는 말’.
<해설>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것, 구름은 까맣게 탄 가슴을 찢고 검은 울음을 쏟아냈다” 시인이 바라본 소나기다. 시인들이 시에서 소나기를 많이 다루지만, 소나기를 단지 쏟아지는 비로만 바라보고 시를 썼다면 그 시는 아마도 기상예보에 가까운 시일 것. 얼마나 재미없는 일일까? 시적 비유에 개인의 체험과 느낌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나기로 형상화될 때, 소나기는 사전적 의미의 소나기를 넘어 그 무엇이 될 수 있겠다. 오선덕 시인이 바라본 소나기는 ‘검은 울음’에 가깝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 끝이 아닌 발바닥을 적시고, 발등을 타고 눈 안으로 들어가 눈물에 어룽진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바로 그런 소나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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