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정이 난 겨울의 입김 때문이다
온 나무들의 속옷까지 벗겨
벌거숭이로 만들어 놓았다
황당한 미루나무
봄부터 여름까지
까치집도 보이지 않게 옷을 끼어 입었는데
가을 내내 하나씩 하나씩 옷을 벗더니
십이월에는 결국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고
속살을 다 드러낸 여인이다
팔다리는 하늘로 드러나게
얼굴만 땅속으로 묻어
아무도 보이지 않게
숨어 버렸다
◇김재구= 루이지애나 주립대학 언어학 박사. 2020년 ‘산림문학山林文學’ 신인상 시 등단. 제1회 재외동포재단 주관 해외한국어교육자 체험수기공모전 수필 부문 우수상. 제1회 적도문학상 시 부문 입선. 제23회 재외동포문학상 가작. 현(사) 한국산림문학회 회원. 전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부회장.
<해설> 아하! 겨울나무는 그러니까. 부끄러움이 많은 나무구나. 부끄러움이란 얼굴을 땅에 파묻고 팔다리를 덜덜 떨며 추위를 견디는 거였구나. 옷을 화려하게 입고 있으면 발정이 난 걸 들킬 게 뻔하므로 어쩔 수 없이 옷을 다 벗고 반성 중인 게 틀림이 없다. 제 몸 안의 열기를 식히는 것인가? 라고 시인의 시를 읽다가 보니 아뿔싸! 나무는 남성이 아닌 여성? 앙상하게 드러난 까치집은 왠지 처량하고 쓸쓸하고. 아무튼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은,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것. 이 시는 혼탁하고 위선적인 작금의 세상을 향해 일침을 놓는 것 같다. 국내가 아닌 사계절이 잘 구분되지 않는 적도에 살면서도 곧고 바른 시인 정신이 살아 있다.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