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걱정 가불
[달구벌 아침] 걱정 가불
  • 승인 2023.08.0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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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장

예전에는 다니던 직장에서 가불을 하는 경우가 흔했다. 가불이 흔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절이 경제적으로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는 의미다. 다들 알겠지만 가불이란 것은 월급날 받아야 할 임금을 미리 앞당겨 받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가불을 하게 되면 월급날이 되어서는 그 달의 임금을 받을 수 없다. 일한 만큼의 노동의 대가만큼 받아야 할 임금을 앞당겨 사용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불이란 제도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돈이 급할 때 비싼 이자를 주고 급전을 빌리지 않아도 되고, 이자 없이 돈을 차용할 수 있어서 적절히 잘 활용하면 좋은 제도다. 하지만 가불은 결과적으로는 빚을 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노동을 먼저 하고, 노동한 시간만큼의 대가를 받아서 생활하게 되면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의 개념이 될 수 있지만, 먼저 돈을 앞당겨 쓰게 되면 '빚'의 개념이 되어버린다. 가불이란 것이 일한 만큼의 돈으로 소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소비부터 하고, 그 후 소비한 비용만큼의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불은 빚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신용카드도 일종의 가불의 개념이다. 신용카드라는 것은 개인의 신용을 담보 삼아 카드사가 돈을 먼저 빌려주는 제도라 할 수 있다. 소비자는 카드사를 통해 실물의 돈은 아니지만, 돈을 먼저 앞당겨 빌리는 행위가 카드사용이다. 겁 없이 막 사용 하다 보면 결국에는 빚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사람의 심리는 당장 눈앞에 부담이 주어지지 않으면 뒤에 일어날 무게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취업한 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용카드라는 것을 만들었을 때, 마치 큰 보상을 사회로부터 받은 것 같았다. 처음 사용해 본 신용카드는 내게 신세계였다. 돈이 없는데도 나는 물건을 살 수 있었고, 친구들과 밥도 먹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코카콜라 병을 부시맨이 신기해했듯, 나역시 부시맨과 똑같아서 신용카드가 너무나도 신기하기만 했다. 지갑에 두툼히 현금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었고, 카드 한 장만 들고 다니면 자동차 기름도 넣고, 마트에 가서 우리 가족을 위해 장도 볼 수 있었다. 마치 그것은 두드리기만 하면 '뚝딱'하고 나오는 도깨비방망이 같았다. 정신없이 카드를 긁어 댔던 것 같다. 현금으로 바로 대금 지불을 하지 않다 보니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다음 달이면 막연히 해결될 거라는 기대감이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빚을 지게 만들었다. 이후 카드 사용대금은 고스란히 빚이 되어 월급날의 기쁨을 나에게서 앗아갔다. 월급날이 되면 앞서 사용한 카드대금을 결제하기 바빴다. 숫자가 들어오고, 숫자가 빠져나가는 것의 연속이었다. 그 빚 막으려 또 다른 카드를 사용하고, 나아가 현금서비스받고, 그렇게 몇 바퀴만 돌다 보니 빚이 산더미가 되어 있었다. 그 빚 갚는다고 한동안 애를 먹었다. 가불은 이렇게 나의 삶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살면서 되도록이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이 가불인 것 같다. 그중 정말 안 좋은 가불이 바로 '걱정가불'이다. 이 말은 사전에 있는 말이 아니라 필자가 만든 말이다. 걱정이라는 것이 지금 당장은 내 삶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앞당겨 사용한 걱정은 훗날 내 삶을 초토화시켜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과도한 카드사용이 삶을 파괴시키듯, 걱정도 앞당겨하다 보면 훗날 감당 할 수 없게 된다. 지금은 몰라도 어느 날,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으로 삶을 짓누를 것이다. 그땐 너무 늦다.

'걱정가불'은 마치 속도위반 카메라의 교통범칙금이 나오기 전의 상황과 비슷하다. 범칙금이 집으로 오기 전까지는 아직 정확한 범법의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가 없다. 고지서가 날아와야 그제야 '속도를 위반했구나' '몇 km를 초과하였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단속카메라를 모르고 지나쳤다고 해서 범칙금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기분 나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기분 나쁨은 범칙금이 집으로 날아온 그날로 충분히 족하다. 걱정은 그때가서 해도 늦지 않을 것같다.

걱정을 가불 하여 사용하지 말자. 걱정이 일의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물론 그 걱정은 필요한 가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가 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의 성격이라면 미리 앞당겨 걱정하지 않기로 하자. 걱정과는 별개로 일어날 일은 일어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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