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꺾이지 않는 의지
[문화칼럼] 꺾이지 않는 의지
  • 승인 2023.08.1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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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간간이 신문의 칼럼 등을 통해서 접하던 소설가 복거일 선생을 언젠가 한번 뵙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당신께서 간암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고 꽤 진행된 상태였지만, 그 후 다시는 검사도 받지 않고 항암치료도 사양 했다. 이 치료를 시작하면 체력이 달려 글을 쓰기 어렵다는 이유로 그랬다는 얘기를 접하고서였다.

그러던 차 6년 전 쯤 인가해서 선생은 희곡 ‘박정희의 길’을 쓰고, 그 공연 관련으로 대구로 오셨다. 그때 우연찮게 함께 점심을 하게 되었다. 생각과는 달리 혈색도 좋고 식사도 잘 드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신께서 구상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말할 때 나지막하지만 확신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밝고 긍정적 에너지가 가득한 표정과 걸음걸이까지 병을 가진 사람처럼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과학이 내놓은 증거들이 너무 확실하니 종교에도 기대지 못하는 나 같은 불운한 사람에게 절망은 가장 확실한 평정을 줄 수 있다. 그것이 가장 안정적인 상태" 대단히 역설적 이지만 한편은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평상심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 치료를 받지 않기로 결심한 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느 새벽녘에 들리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그때 나는 물러나지만 새로운 세대가 자란다는 생각에 가슴에 따스한 기운이 번졌다." 그 느낌을 동시로 쓴 후 시상이 샘물처럼 흘러나오고, 잠자리의 답답함도 차츰 줄어들었다고 했다. 글을 쓰는 것으로 그야말로 불안을 넘어 평상심의 세계로 넘어간 것이다.

복거일 선생은 최근 이승만을 소재로 한 역사(전기)소설 ‘물로 씌어진 이름’ 1부 전 5권을 마무리 했다. "체력은 달리지만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집중이 잘 돼 글은 오히려 더 잘 써진다. 매일 오전은 어김없이 글을 쓴다. 1부를 마무리 하는데 8년이 걸렸고 그 정도의 분량이 될 2, 3부도 이미 쓰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그때까지 버티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신다.

사람의 인생, 한 순간 한 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은 없겠지만 선생에게는 특히나 그 소중함의 밀도가 높은 나날에 그의 말처럼 ‘사학자들에게는 가볍게, 문학가들에게는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평을 듣는 역사 소설’에 천착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런 모든 것을 떠나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생명을 연장하고 싶을 텐데 글을 쓰기 위해 그것의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병원치료를 마다하고 작품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복거일 선생은 보통 분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다.

10여 년 전 첫 암 진단을 받을 당시에도 상태가 쉽게 손대지 못할 정도였다는데 아직도 저렇게 왕성하게 글을 쓰며 생의 도전에 용감히 맞설 수 있는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꺾이지 않는 의지로 단단히 무장된 그의 정신을 암이 쉽사리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부디 선생이 소망하는 작업을 마무리 할 때 까지 잘 버텨주시기를 바라마지 않는 마음이다.

지난 5월말에 심장마비로 선종하신 몽골의 고 김성현 신부님의 존재는 살아 계실 때 보다 떠나시고 난 후 훨씬 크게 다가온다. 고인에 대해 몰랐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참 대단한 분이셨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분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은 마음에 한 때 당신께서 한글 선생으로 일하시던 몽골 시골을 찾아, 가까웠던 이웃 사람들을 만나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즐겨 찾으시던 곳도 둘러보며 이 외로운 초원에서 지내실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특히 선종 당일에 있었던 신부님의 일들에 대하여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날 고인의 모든 행적으로 미루어 봤을 때 이 세상에서의 당신 삶의 운명을 너무나 분명히 인지하고 계셨다고 생각한다.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이 그렇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

그런데 아무리 죽음 너머의 세계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해도 몸의 이상을 느끼면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사람의 본능 아닐까?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 오히려 그 순간을 기다리신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체 없으셨던 분이니 그날 모든 것을 순응하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맞이하셨던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분이 평소 가지신 의지였고 그 생각을 꺾을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는 없었던 것이겠지.

이 두 분의 마음을 나 같은 보통사람이 쉽사리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시간을 최선을 다해 살고, 소망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용맹함으로 무장한 분들이다. 꺾이지 않는 의지로 자신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 나가는, 또 그렇게 이룬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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