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혼자 살아요
[좋은 시를 찾아서] 혼자 살아요
  • 승인 2023.08.2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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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란 시인

고양이처럼 사뿐 책장 위로 뛰어 올라갈 수 있나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울 수 있나요

강아지처럼 발랑 배를 뒤집고 오줌을 잘금거릴 수 있나요

이구아나처럼 천천히 초록일 수 있나요

비단뱀처럼 사랑하는 오늘의 목을 칭칭 조일 수 있나요

거북이처럼 꾸준히 느린 척할 수 있나요

두 발을 화분에 심고 푸른 자세로 벌설 수 있나요

달팽이가 손등과 팔을 갉아 먹어도 모른 척할 수 있나요

나무늘보가 수학시험 답안지를 꽃그림으로 채워도

말대답 심한 선인장이 다리를 팔아 꼬리지느러미를 사도

반달곰이 보름달 아파트를 열기구 풍선과 바꾸어도

아무 말 하지 않을 수 있나요

토끼는 어디에서 쫑긋 눈이 붉어질 수 있을까요

유효기간이 지나서가 아니라면 면접이 어려워서일까요

늑대와 여우가 반려애인에서 퇴출되고 있어요

◇최정란= 경북 상주 출생. 계명대 영어영문학과, 계명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3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아르코 창작기금, 최계락 문학상, 시산맥작품상, 세종 도서 문학 나눔. 시집 『독거소녀 삐삐』 외 4권이 있음.

<해설> 최정란 시인의 「혼자 살아요」 는 반어와 역설의 시다. 다양한 반려동물과 반려 식물이 인간의 자리를 대신한 시대, 인간이 인간의 반려가 되지 못하는 시대를 비틀고,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청년들을 풍자적으로 그려놓았다. 나무늘보는 아들, 말대답이 심한 선인장은 딸, 반달곰은 남편, 토끼는 자식, 늑대는 전통적으로 표현되던 남자친구 혹은 남편, 여우는 여자친구 혹은 아내의 은유일 것이다. 그런 반려동물과 반려 식물들의 여러 표정을 에둘러 표현하고 있는 시인은 시의 재미를 더하기 위한 어떤 장치로 진지함을 발랄한 어법에 담아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현재 부산에 거주하며 많은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데 고향인 대구를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는 심정도 전해왔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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