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아양루 시선들 하늘에 오르자 아홉 용은 구룡산이 됐다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아양루 시선들 하늘에 오르자 아홉 용은 구룡산이 됐다
  • 김종현
  • 승인 2023.08.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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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구룡산정 아양루에서 금호풍류의 멋을
현재의 아양루, 해방 직후 건립 추정
아양음사가 수선해 음풍농월 맥 이어
편액·주련 등 31개 시판이 걸려 있어
대구유림 아양음사 시간적 변모 짐작
시문으로 작품 배경 당시 시대사조 엿봐
금호강아양루
아양곡(峨洋曲)을 탄금하고 있는 아양루(峨洋樓)

◇소유정에서 음풍농월했던 선비들

‘작게 가짐(小有)’이란 ‘우공이산’의 고사가 있는 오늘날 중국 하남성 제원시에 있는 강 이름으로 사아오허(小有河)가 지금도 흐르고 있다. 억지로 설명한다면, 작고 청허한 이상적인 세계(小有淸虛之天)를 소유(小有)라고 했다. 채응린은 ‘소유정(小有亭)’을 건립하고 이같이 감회를 적었다. “산기슭에 푸른 솔이 있고, 절벽 아래 강물이 흐르니. 강 너머 푸른 들판까지 있다니. 강물 위에 민가들이 있다네. 물을 논하고 산을 논하고자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다만 평생을 원하는 게 옛사람들은 만나고자 할 뿐이라네.” 도교의 그곳 산을 왕옥산(王玉山), 천단산 혹은 천하제일동천(天下第一洞天)이라고 했다.

소유정에서 음풍농월했던 선비들의 시구를 모아 묶은 ‘소유정제영록(小有亭題詠錄)’에서 용계 김지남(金止男, 1559 ~1631)의 ‘소유정차운(小有亭次韻)’을 뽑아 보면, “강섶 언덕 위 십여 가옥들이 있는데. 한 가닥 오솔길 따라 몇 사람 안 되게 찾아들었네. 이곳에 올라 속된 세상의 험악함이야 갑자기 알게 되겠다네. 바라다보니 이제야 시야가 틤을 알게 되겠네. 아리따운 화초들 모두 숨죽이고 있는데, 가깝고도 먼 산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네. 저물어가도 자연의 정취야 다할 수 있겠는가. 빈 배 독촉해 띄워보러 강변 백사장에 내려가네.” 이에 순찰사 용계 선생의 ‘배를 타고 지음(船中作)’에 이어(次韻), 가장 늦게 도착한 지역 선비 우옹(迂翁) 이문우(李文雨, 생몰연도미상)는 벌주삼배(罰酒三盃)하고 곧바로 순찰사 선중작에 공경히 운을 이어(敬次巡相船中作)… “늦게 도착하고 보니 경치가 겨우 눈에 들어오네. 해 저무는데 어부의 민가에 저녁 안개가 가로질러 있는데... ” 이어서(次韻) 창원부사(昌原府使) 관은(灌隱) 박홍미(朴弘美, 1571~1642)가 “금호 강변에 소재하는 처사 댁을 찾아드니, 숨겨진 곳이라서 마차도 말도 다녔음이 적어 보이네. 강섶 언덕배기 마당에 작은 집터 마련했으니, 허공에 치솟은 마루 달빛에 빠져들었네. 산골짝은 소유동(小有洞)의 소굴인 듯하구나. 백성들의 풍속은 옛날 신라 때와 같은 듯하네…”

이어(次韻) 찰방(察訪) 임련의 풍월시가 이어졌는데 “산뜻하게 차려입은 바위 언덕 그 위에 집이 있다네. 차가운 물 흐르는 강은 난간 앞으로 흘러가네. 산봉우리들이 희미하게도 저 멀리 하늘에 닿아 있다네. 넓은 들판은 아득하게 눈에 들어오는구먼… 비 그친 금호강 물결은 푸른 비단처럼 일렁거리네. 애석하도다, 역마차처럼 달려가는 (금호물을) 멈출 수 없어서. 억지로 속이고자 백구가 날고 있는 백사장으로 고개를 들어나 보네.”

◇아양루 시선(詩仙)이 하늘에 올랐을 법도

금호 물 섶 아홉 마리 용들이 승천하러 하늘을 우려보고 있는 참에 가장 먼저 아양루의 시선들이 먼저 하늘에 오르자, 금호 구룡들은 그만 구룡산이 되었다. 구룡설화로 인해 하늘과 직통하는 명당으로 일제가 달성공원 이외에 비장신사(秘藏神社)를 이곳에다가 세웠다는데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오늘날 그 자리엔 구룡산통천사(九龍山通天社)가 설립되어 있다. 한 마디로 금호강물이라는 대자연의 거문고(琴湖)로 ‘고산유수(高山流水)’가 있는 ‘아양곡(峨洋曲)’을 탄금하고 있는 정자(亭子)가 바로 아양루(峨洋樓)다. ‘열자(列子) 탕문편(湯問篇)’에서 “높고도 높은 그대의 뜻은 저 높은 산에 있도다. 넓고도 넓은 그대의 의지는 저렇게도 흘러가는 물에까지 있도다(峨峨乎志在高山, 洋洋乎志在流水).”라는 ‘아양곡(峨洋曲)’의 혼맥이 서린 누정(樓亭)이 바로 아양루(峨洋루)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선 지음지교(知音之交)했던 종자기(鍾子期)가 세상을 떠나자 백아선생(伯牙先生)은 거문고 줄을 끊고 탄금(彈琴)을 그만두었다. 오늘날 아양루 아래에선 거문고 금호는 여전하게 흐르는데, 정자에서 탄금과 음풍농월했던 시선들은 모두가 구룡산통천사의 옆문으로 기룡상천(騎龍上天)하셨는지 한 분도 없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아양루(峨洋樓, Ayangru Pavilion)는 해방 직후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남유림의 얼(魂)을 지키고자 뜻을 같이한 ‘아양음사(峨洋吟社)’에서 1956년 아양루를 다시 수선하여 음풍농월의 맥을 이어왔다. 1984년 (사)담수회에서 관리하다가 2001년 대구시에 기부했다. 대구시에선 2003년 중수해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시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누각(정)이다. 예술작품으로는 편액과 주련 등 31개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근대화 시기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때 대구유림 아양음사의 시간적 변모를 짐작할 수 있다. 시판의 시문을 통해 작품 속의 배경과 내용은 물론 글씨를 통해서도 당시 시대사조를 더듬을 수 있다.

마치 ‘송서(宋書)’ 도연명전(陶淵明傳)에서 “도잠선생은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항상 줄 없는 거문고 한 대를 옆에 두고 술이 거나 할 땐 그 거문고를 타서 자기 마음을 실어보내는 음풍농월을 했다.”

고려말 이규보 선생께서 ‘도연명의 시를 읽고(讀陶潛詩)’ “…늘상 줄 없는 거문고를 끼고 사셨다니(常撫無絃琴)… 지극한 음률은 원래부터 소리가 없는 법이지(至音本無聲). 어째서 수고스럽게 거문고 줄에다가 손까지 대실까? 평온한 조화는 대자연에서 나오는 거고. 오래 씹을수록 더욱 담백한 맛이 나는 법이지(何勞絃上指, 平和出天然, 久嚼知醇味).”

이를 본 화담 서경덕 선생은 아예 ‘줄 없는 거문고의 새김(無絃琴銘)’을 적었으니, “거문고에 줄이 없는 건, 본질은 그대로 두고 형성만 잡아뺀 것이지. 진정 형성을 뺀 게 아니라, 고요함에다가 역동성을 집어넣은 것이지. 음을 통해서 천상의 소리를 들어도 소리 없이 듣는 것만 못하다네(靜基含動, 聽之聲上). 그놈의 묘함이란 갖고있는 게 이외를 얻고, 없음에서도 알맹이를 얻어 챙긴다니(乃得其妙, 外得於有, 內得於無).귀로 듣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듣는다네(音非聽之以耳. 聽之以心).”

조선 세종 때 광주목사와 병조정랑을 역임한 평창 이씨 이영서(李永瑞, 출생미상~1450) 선생의 ‘줄 없는 거문고(無絃琴)’란 시는 “도연명이 하나 갖고 있는 거문고에 줄을 매지 않았다는 건 뜻이 더욱 심오했다네. 진실한 취향을 어찌 거문고 소리로서 얻을 건가? 천기란 반드시 정적 속에서 찾을 수 있지…”라고 노자의 ‘무성대성(無聲大聲)’을 설파하고 있다.

이런 우리의 선인들의 풍유를 벤치마킹이라도 했는지? 영국의 낭만파 시인 3인 가운데 한 사람인 키츠(John Keats, 1795~1821)는 자신의 시 ‘그리시항아리(瓷器)에 붙이는 노래(Ode on a Grecian Urn)’에서 “귀에 들리는 노래는 아름다우나, 들리지 않는 곡조 더욱 감미롭도다. 그대 부드러운 곡조의 피리를 계속 불어라. 육신의 귀에다가 아니라 더욱 다정스럽게 영혼을 향해 선율 없는 노래를 불러다오(Not to the sensual ear, but, more endear’d, Pipe to the spirit ditties of no tone).”라는 한 꼭지를 남겼다.

전해오는 설화로, 아양루에서는 서거정이 ‘금호범주(琴湖泛舟)’를 낭낭하게 읊었을 때 정자(아양루) 뒤 구룡산이 꿈틀거렸다고. 천둥 치고 벼락도 쳤다. 그 순간에 시선들이 용을 타고 기룡상천(騎龍上天)했다. 그 뒤 이곳에서 음풍농월했던 시선들 모두가 하늘에 문성(文星)이란 별로 환생했다. 천상문성(天上文星)들은 아양루의 추억을 잊지 못해 밤마다 하강해 무현금풍류(無絃琴風流)를 즐기신다. 즉 시삼백주삼백(詩三百酒三百)이란 시선 이태백도 동참하셨고, ‘줄 없는 거문고로 소리 없는 아양곡을 연주한다(彈無絃琴, 演無聲曲).’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밤하늘에 뭇별들이 금호강물에 뛰어든다. 마지막 토크쇼 ‘별이 빛나는 밤’엔 별과 꽃들의 소리 없는 소곤거림이 시작된다. 끝내 혼줄을 놓았던 가로등이 그만 금호 강물에 무(無)~첨~벙~무(無)~첨~벙 빠지고 만다. 그러자 강섶 꽃들도 넋을 잃고 고요한 평온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글·그림=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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