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생명의 젖줄이자 치유의 공간…최정산은 살아있다
[자연이 살아야 우리가 산다] 생명의 젖줄이자 치유의 공간…최정산은 살아있다
  • 채영택
  • 승인 2023.08.24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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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의 보고 최정산을 생각하며
계획없이 무작정 시작된 등산
새소리 대신 온통 매미소리 가득
발 아래 계곡서 시원한 물소리
온갖 활엽수 녹음이 얼굴 물들여
등산로 주변 따라 산불의 흔적
올해 말까지 산림휴양공간 개발
반가움보다 걱정스러움 앞서
잘 보존된 생태계 훼손 않기를
사진1
최정산 서북쪽 8-9부능선에는 단풍나무 등 활엽수들로 식생생태계가 안정되어 있다.
 
사진3
졸참나무 열매.
 
사진4
불탄 흔적이 남아 있는 등산로 주변 나무들.

얼마전 하늘에는 잔뜩 구름이 끼어있고 습도는 높아 숨쉬기도 힘든 오전 아홉시쯤 나는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최정산 등반을 목표로 차를 타고 나섰다.

가창댐을 지나 운흥사절 아래 은행나무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차문을 여는 순간 날파리며 깔따구의 습격이 영혼을 더럽히는데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후덥지근한 날씨로 숨을 쉴 때면 이러한 날벌레와 해충들이 갑자기 콧구멍으로 들이닥치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 등산을 시작도 하기 전에 진을 빼놓았다. 지난 몇 년 동안 계절별로 이곳을 자주 찾곤 했는데 올해는 한여름에 이곳 최정산의 식물들을 관찰하는 재미로 무슨 전문가처럼 탐방이랄것까지도 없는 것이 나는 그냥 산이 좋고 그리고 나무가 좋고 꽃과 풀이 좋아 찾아 간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내 머리 속에 든 짧은 지식의 재고가 계절과 온도와 마음의 변화로 분수처럼 솟아 오르면 나는 가차 없이 배낭을 메고 아무 산이나 계획 없이 나서는 버릇이 있다. 계획에 얽매이다 보면 늘 현재를 놓치고 긴장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하루하루 충만한 시간이 되기 어려워진다. 최소한 나에게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최근 출간된 에세이 한주희의 ‘재미있어 만들다 보니’ 라는 책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저자는 계획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는데 계획적이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냉철한 사고로부터 자신은 자유로워지고자 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유가 하루 하루를 아무렇게나 마음대로 산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강박과 계획이라는 강고한 트러스트를 파괴하므로써 새로운 창조적 신선한 아이디어와 생명의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철학자 한병철과 중앙대학교 김누리 교수는 현대 사회는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시대’라고 말한다.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지 못하고 무엇인가 끊임없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채찍질해야지만 자신이 발전하는 것 같고 뒤처지지 않는다는 강박 관념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자신의 내면에 축적되어 왔고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치열한 경쟁이데올로기의 관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라서 오롯이 자신의 참모습을 바라보려면 이러한 정형화된 계획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나 아티스트들은 정형이라든지 형식, 권위, 권력, 통제 등과 같은 규준적 프레임을 매우 싫어한다. 이러한 관념들은 꼭 예술가나 아티스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숨막히는 구속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함은 진정 바라던 바가 아니겠는가. 어떤 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만 통용된다는 생각 자체도 우리의 창조성과 사고를 멈추게 한다.

이날의 등산은 그렇게 계획 없이 시작된 것이었다. 수많은 날벌레들의 환호를 받으면서 자생 송이버섯 단지가 있는 북서쪽 사면을 천천히 올라갔다. 작년 겨울에 와보고는 올 여름이 처음이었다. 꿉꿉한 날씨지만 백여미터쯤 올라갔을까 코가 민감한 탓인지 갑자기 어디선가 나무 탄내가 난다. 등산로 주변 진행 방향으로 길게 산불이 나 있었다. 그것이 실화든 방화든 최정산은 그래도 대구에서 자연 천이의 진행 과정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라 우리가 보존하고 보호해야 할 몇 남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임에 틀림없다. 최정산 일대는 주암산, 통점령, 탕가산 지역으로 정상부이지만 인근 주암산은 군사 기지와 평지 지형의 목장 지대, 통신탑이 위치한다.

최정산은 표고가 915미터로 화산 활동으로 융기한 화산의 뿌리로 정상은 고산 평지의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는 지역이다. 평지는 목장과 무인 기상대, 군사 기지 및 통신기지로 활용되고 있으며 북쪽과 서쪽의 경사가 심한 지형은 용계천을 형성하고 가창저수지로 물이 유입된다. 동쪽은 신천의 최상류 지역으로 농경지와 인가가 밀집한 주거지로 여름철 행락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리고 남쪽은 통점령, 탕가산 등이 능선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임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최정산의 개략적인 지형은 이렇듯 생명의 젖줄이자 치유의 공간이다. 자연스러운 천이가 진행되다가 자연 재해나 인간의 간섭에 의한 훼손이 일어날 경우 2차 천이가 진행되는데 이곳 등산로 주변의 하층 식생은 불로 인해 모두 타버리고 더욱이 낙엽이 떨어져 유기질 거름이 만들어지는 표토도 많이 유실된 듯하다. 인류의 생존이 표토에 달려있을 만큼 표토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소생해서 옆에 있는 불에 그을린 참나무의 검은 상처를 살며시 보듬고 있는 담쟁이덩굴이 기특하기도 하다.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 이곳 최정산에는 새소리는 들리지 않고 온통 매미 소리로 산을 가득 울리고 있다. 매미는 7년여 동안 땅속에 있다가 지상에 올라 와서는 겨우 1년, 그것도 강렬한 햇빛이 난무하는 여름 한철만 살다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기막힌 숙명의 동물인데 온 산이 매미 소리로 가득한건 바로 한철 짝짓기를 위해 목이 터져라 상대를 부르는 처절한 생존의 외침이었다. 무더운 여름 가슴이 뻥 뚫리고 시원함을 주는 매미는 분명 없어서는 안될 친구임이 틀림 없기에 매미소리가 없는 여름은 상상할 수도 없다는 이야기다.

산을 올라갈수록 습도가 높아 점점 숨쉬기가 곤란해진다. 발아래 계곡에는 시원한 물소리가 빨리 내려와서 뜨거워진 몸과 땀을 식히고 가라고 자꾸 유혹한다. 물론 경사가 너무 급해 내려갈 수도 없지만 웃통을 벗고 작은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물을 흠뻑 맞고 싶은 심정이다. 울창한 밀림 같은 이곳 최정산의 등반은 그래서 좋다. 입구에서부터 이곳 5부 능선쯤은 개잎깔나무와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군락 그리고 소나무림이 무성해서 숲속은 꽤 어둡다. 먹구름이 낀 날은 불을 밝혀야 할 정도로 녹음이 짙은데 그때 갑자기 내 눈앞에 나타난 한송이 버섯이 줄기에는 노랗고 환한 등불을 켜 놓은 듯 등산로 한 가운데에 낙엽을 헤치고 봉긋이 솟아 있다. 물론 독버섯이다. 왠지 길이 환해지는 느낌이다.

불탄 자리는 이곳까지 상처를 입히고 끝난 것 같다. 하지만 대자연의 위대한 재생 능력은 이곳에 또 다른 생명인 꿩의비름과 산수국들을 지천으로 키워내고 있었다. 특히 산수국은 이제 막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데 꽃의 크기가 너무 작아 수분과 수정을 위한 곤충을 불러올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바로 무성화다. 가짜 꽃인 무성화는 잎이 변해서 마치 꽃저럼 보이는데 산수국의 지혜로운 진화의 결과다.

기후 위기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는 예측할 수가 없다. 산에 머루가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산채 도굴꾼이 산머루를 뿌리채 캐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기후 변화가 더 큰 원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곳 최정산에서 개머루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등산로 위로 점점 더 올라갈수록 눈에 띄는 나무가 철쭉인데 잎의 모양이 길쭉한 산철쭉과는 달리 잎의 모양이 동그랗다. 수로왕과 어느 노인 이야기도 바로 철쭉이 그 주인공이다. 연달래라고도 하는 철쭉은 진달래처럼 먹지는 못하는데 그레이아노톡신이라는 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이름하고 이에 반해 먹지 못하는 철쭉은 개꽃이라고 부른다.

어느덧 정상 부근인 8~9부 능선에 도착하니 온갖 활엽수의 녹음이 얼굴을 물들인다. 잠시 여장을 풀고 가만히 앉아 산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다. 이곳 역시 온통 매미 소리로 가득하고 앉은 자리가 계곡이 시작되는 지류가 형성되는 곳이라서 물소리는 거의 들을 수는 없다. 작은 관목은 대부분 철쭉이고 굵기가 일정한 작은키 나무와 큰키나무가 서로 섞여 빽빽이 들어차 있는 모습이 마치 하늘 가득 축복이 내리는 평화롭고도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곳의 식생은 서어나무며 신갈나무 갈참나무 단풍나무 철쭉 등 다양한 활엽수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식생 천이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인지 생태계가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다. 침엽수로 이루어진 울창한 숲은 때로는 음산하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활엽수의 넓은 잎으로 강렬한 햇빛이 쏟아져 걸러진 부드럽고 은은한 빛은 우리의 마음을 훨씬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준다. 이 순간을 위해 땀흘리고 숨막히는 여정을 수행자처럼 견디다 보면 어느덧 이곳 정상 부근까지 올라올 때 힘들었던 모든 것들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최정산의 서북쪽 등산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다. 남향보다는 햇빛의 절대량이 적은 탓에 오히려 더 시원함을 느낄수 있다. 생태계의 보고인 최정산은 올해말까지 남쪽 부근과 정상부 인근에서 시민들을 위한 산림 체험과 힐링, 휴양을 위한 공간으로 개발을 한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보다 걱정스러운 마음이 먼저 앞선다. 북사면과 서쪽의 잘 보존된 자연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임종택<생태환경작가·다숲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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