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나의 좌충우돌 여름나기
[문화칼럼] 나의 좌충우돌 여름나기
  • 승인 2023.08.3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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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나는 두 가지에 욕심이 있다. 다른 것에 비해 책과 문구류를 탐내는 편이다. 문구류 중에서도 필기구를 특히 좋아한다. 만년필도 최고급부터 싼 것까지 그리고 온갖 필기구를 가지고 있다. 나는 손으로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여기에도 나름의 규칙이 있다. 만년필, 볼펜 그리고 연필 이런 것들을 종류별로 용도에 맞춰 쓰다가 때로는 반대로 바꿔서 쓰기도 한다.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오가는 길에 문구점에 들리면 뭐라도 한두 개 사게 된다. 그러다보니 집에 이런저런 문구류가 제법 쌓여간다.

약 5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한 도쿄여행 때 들른 ‘이토야 문구 긴자점’은 나에게 별천지였다. 거기라면 하루 종일 재미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여행지에서 시장 어물전 구경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것처럼 문구점에 가면 늘 마음이 행복하다.

그리고 나는 책에 욕심이 있지만 대단한 독서가는 전혀 아니고, 책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맞을 것 같다. 책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또 책을 사는 경우가 잦다. 언젠가는 또는 곧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책을 사지만 읽는 속도보다 사 모으는 것이 더 빠른 편이다. 그러다보니 읽지 못한 책이 자꾸 쌓이게 된다. 그래서 욕심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집 서재에 가지런히 꽂혀있는 책을 보면 기분이 좋다가도 한숨이 나온다. 이렇게 좋은 책을 아직도 읽지 않았다니…. 또는 저건 지난여름에 산 건데 아직도 저러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 지기도 한다. 아무튼 책 사는 것으로 나의 지적 허영심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번 여름은 숙제 한다는 생각으로 내 손길을 기다리는 책들과 놀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최근 주로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밀린 책을 읽다보니 마음의 짐을 던 것처럼 홀가분하기도 했다. 그러던 차 우연히 건축기행 안내를 보게 되었다. 유난히 더운 이번 여름에 이정도로 궁둥이 붙이고 있었으니 하루 정도는 다녀오자 해서 길을 나섰다. 내가 건축에 조예가 깊다 던지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졌던 것이 전혀 아니다. 한창 성악가로서 노래하던 시절에는 노래 하나만 쳐다봤다. 공연장 관장으로 일할 때는 또 거기에만 집중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막상 일을 그만두고 쉴 때가 되자 아! 내가 아는 게 정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관심의 폭을 넓혀 이것저것 공부했다. 몰라도 사는 데는 지장 없겠지만 알면 인생이 조금 풍요로워질 것 같은 그런 것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건축에 대한 것이었다. 때로는 훌륭한 그림보다 그것을 담고 있는 미술관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때도 있었다. 특히 일본 여행을 위해 책을 여러 권 구해서 읽다보니 이 분야에 점차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쿠마 켄고, 르 코르뷔지에 그리고 페터 춤토르와 유현준 같이 건축가이면서 글을 뛰어나게 잘 쓰는 분들의 책과 만나면서 이들의 세계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건축이라는 코드를 어떻게 읽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점차로 일었다. 그러다 만난 나의 첫 건축기행이었다.

김해로 떠나는 기행이었다. 이번에 둘러본 건축물들이 소위 말하는 블록버스터 급(?)의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소박한(?) 작품들을 전문가는 어떻게 생각하고 표현할 것인지 그것이 오히려 더 궁금해 따라나선 길이었다. 유명 건축가가 안내하는 이번 기행에는 현직 건축가, 건축 전공 학생들 그리고 건축에 조예가 깊은 일반인들 등 전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둘러보고 각자의 생각과 전문가의 시선의 합을 맞춰보는 자리였다. 대단히 학구적인 시간이어서 희미하게나마 이 세계를 조금 엿볼 수 있었다. 여기에도 학습해야 하는 문법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살아가는데 있어 매우 즐거운 도구가 될 것 같았다.

지인 중에 훌륭한 건축가가 있어서 언젠가 대구에서 건축기행 프로그램을 한 번 하면 좋겠다는 건의를 한 적이 있다. 여기에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가진 자산을 해석하는 방법 중 하나로 건축가와 함께 길을 찾아나서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늘 지나치며 무심히 바라보던 건축물의 겉과 안을 새로운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건축가들의 생각과 그 결과물이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참 좋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한다.

모처럼 기차로 이동하던 중 열차 내의 모니터에 여행가 김찬삼에 대한 영상이 나왔다. 지금은 너나할 것 없이 여행 작가다, 여행 유튜버다 해서 여행 관련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지만, 해외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던 시절에 세계일주를 통하여 우리에게 꿈을 심어준 사람,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가 새삼 다가왔다. 그 시대가 반영된 그의 책을 찾아 읽으며 오는 가을을 맞는 것도 꽤나 낭만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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