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1561년에 심은 회화나무, 선비의 위엄스런 풍채 간직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1561년에 심은 회화나무, 선비의 위엄스런 풍채 간직
  • 윤부섭
  • 승인 2023.09.0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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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선비나무
선인들, 우물·사당 등에 정화목
꽃봉오리는 풍병 치료에 사용
대구 대표 선비나무는 둔산동에
최동집 선생이 1600년대 심어
달성공원·북구 검단동에도 남아
금호강소유정가
계명대학교 도서관이 소장 중인 소유정가

◇대구에 남아 있는 회화나무

회화나무의 쓰임새에 대해서 고전 의학서인 본초강목(本草綱目) 혹은 동의보감(東醫寶鑑) 등을 살펴보기보다 먼저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걸 보면, i) 꽃(槐花, 槐米)과 열매(槐角)는 달려서 황색염료로, ii) 약제로는 어린 꽃을 풍치(風齒)에, 열매는 은행(銀杏)처럼 살충제, 지혈제 및 항습진에 사용해왔다. iii) 나무 전체가 류틴(rutin)과 베툴린(Betulin)이라는 파이토 케미컬(phyto-chemical)이 있어 지혈(止血), 고혈압, 뇌일혈(腦溢血) 치료에 추출물이 사용된다. iv) 조선 선비의 처첩(妻妾)들이 그렇게 젊었던이유는? 아마도 최근 회화나무 콩과식물에 나오는 이소플라본(isoflavone)의 일종인 ‘소포리코 사이드(sophoricoside)’성분이 발견되었는데, 여성갱년기를 치료한다는 사실로 봐서 회화나무 그늘에 잦은 출입으로 갱년기 치유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미 우리 선인들은 회화나무를 i) 정갈하게 정화(精華)해야 할 우물, 사당, 재실, 정자, 향교 등에다가 정화목(精華木)으로 심었다. ii) 뿐만 아니라 꽃봉오리를 괴화(槐花) 혹은 괴미(槐米)라고 해서 노동을 경시했던 조선 양반들에게 흔했던 풍병(風病 : 중풍, 동맥경화 혹은 고혈압) 예방과 치료에 사용했다. iii) 선비나무(儒生樹)라고 하는 데는 괴화(槐花)를 이용해 문집 혹은 서책의 표지에다가 황색 물들이기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도 흰색 종이보다 아이보리(ivory color) 혹은 미색(米色) 종이를 선호하듯이 괴화염색지(槐花染色紙)인 괴황지(槐黃紙)를 당시 선비들은 선호했다. 오늘날 형광등 혹은 LED 등불 아래에서 고광도의 가시광선 반사를 하지 않고 흡수하는 효과로 눈을 보호하기 때문에 선진국에서도 백색 종이를 회피하고 있다. 괴황지(槐黃紙)의 뜻을 ‘좋은 귀신(善鬼)이 붙은 나무(槐)로 온갖 잡스러운 귀신들(雜鬼)을 꾹 눌러(壓黃) 죽여서 땅으로 보낸다(地之).’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벽사용 부적, 서책 및 소지(燒紙)로 많이 사용했다.

서지학적(書誌學的)으로 우리나라 고서의 특징은 i) 종이 지질(부패방지제)에서 괴황표지(槐黃表紙)에다 부풀어 오르지 않게 내지(內紙)에까지 들기름을 먹였다.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커피, 녹차, 꽃(허브)을 염료로 사용한다. ii) 서책편철에 있어 우리나라는 5개 구멍(음양오행)으로 오공철(五孔輟)을 하였으나, 일본은 사공철(四孔輟), 중국은 사공철(四孔輟) 내지 십공철(十孔輟)까지 짝수(偶數)로 구멍을 뚫어 우수편철(偶數編綴)을 한다. iii) 가장 큰 특징은 접는 부분에 책명, 권수, 면수를 적고 여기에다가 ‘물고기 꼬리(魚尾, fish tail)’ 모양 비밀마크를 넣는다. 단순한 어미(魚尾)가 아니라 단엽연화어미(單葉蓮花魚尾), 쌍엽연화어미(雙葉蓮花魚尾) 등으로 학맥과 문중을 표시했다.

현재 대구에서 대표적인 선비나무(儒木, schola tree)로는 둔산동 경주최씨 옻골(慶州崔氏集姓村)에 대암 최동집(1586~1664) 선생이 1600년대 심었던 옻골 동네 수호목(守護木) 2그루 회화나무(수고 12m, 수흉 2.9m)와 과거 달성서씨 세거지(達城徐氏世居地)였던 달성공원(達城公園)에 구계(龜溪) 서침(생몰연도미상, 고려말~세종조) 선생이 1433년 이후 심었던 회화나무가 있다. 뿐만아니라 북구 검단동에 압로정(狎鷺亭)을 세웠던 채응린(蔡應麟, 1529~1584)이 1561년에 심었던 회화나무 또한 학자수(學者樹, scholar tree)로 지금까지 400~500년 동안 선비의 위엄스러운 풍채(威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노계(蘆溪)의 ‘소유정가(小有亭歌)’가 발견됨으로써

1980년 4월 영천시 민가전승(民家傳乘) 고서(古書)가 중고상을 통해 계명대학교 도서관에 매입되어 소장 중인 책이 있다. 바로 박인로(朴仁老, 1561~1642, 82세)의 ‘소유정가(小有亭歌)’다. 서지학적 측면에서는 i) 육폭 양면 습책본(六幅兩面褶冊本)으로 크기 31.7cm× 24.6cm에 가사가 필사되어 있다. ii) 전문 4폭에 ‘소유정가(小有亭歌)’가 쓰였고, 나머지 2면에는 표지와 뒷장이다. iii) 뒷면 3폭은 당시 소유정의 편액 글자를 1폭에 1자씩 베껴 썼다. iv) 나머지 2폭에는 모사(摸寫)하게 된 경위인 “소유정에 걸려 있는 편액을 베낀 글자에 대한 설명(摸小有亭揭號額字說)”을 하고 있다. v) 이어 채응린(蔡應麟, 1529~1584) 선생의 한문시(漢文詩)를 써 놓았다. 지질(紙質)은 흑갈색(黑褐色)으로 햇빛에 바래졌으며, 앞표지에는 아무런 책 제목(冊題)도 없다.

이어 ‘소유정가(小有亭歌)’의 작품 내용을 보자. i) 사용한 문자는 한글과 한문을 혼용(國漢混用)했으며, ii) 위에서 아래로 뛰어 쓰기를 하지 않고 적어 내려간 필사(縱排連寫式記寫法)로 적혀 있었다. iii) 한자는 달필(達筆)에다가 흘림체(草書)로 갈겨놓았기에 읽기가 쉽지 않다. iv) 첫째 폭 12줄, 둘째 폭 16줄, 셋째 17줄, 넷째 20줄 등 총 66줄의 가사였다. 각 줄은 21자 내외로 율조(律調)를 맞췄다. v) 첫 폭 첫 머리에(冒頭)에 “소유정가(小有亭歌)”라는 노래 제목(歌題)이 적혀 있고, 아래에 “박만호인노작 영천인(朴萬戶仁老作 永川人)”이라고 필자를 표시했다. 뒷면 세 번째 폭에서 ‘소유정(小有亭)’이란 편액(扁額)을 쓴 필자를 “작은 소(小)” 글자의 오른쪽 위에다 “선종조 승지 배대유(裵大維)가 쓴 글씨다. 한 나라에서 제일가는 명필이고 창녕 사람이다(宣宗朝承旨裵大維筆也一國名筆靈山人也)”라고 소개했다.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1561~1642) 선생의 가사 ‘소유정가(小有亭歌)’가 이렇게 발견된 게 ‘압로정을 읊었던 노래들(鷺亭題詠)’이다. 이 문건(文件)엔 이원정(李元禎)의 ‘압로정기(狎鷺亭記)’를 비롯하여 이석번(李碩蕃), 민점(閔点), 한수원(韓壽遠), 최준상(崔俊尙), 이민구(李敏求) 등의 ‘소유정판상차운시(小有亭板上次韻詩)’가 게재되어 있고, 이어 채응린(蔡應麟) 관련 시문과 각종 기록문이 필사되어 있다. 압로정 현장을 찾아 시판(詩板)을 살펴보면 아들 선길(子 先吉), 선현(子 先見), 선근(子 先謹)의 글이 눈에 들어온다. 당시 7남 2녀로 맏딸은 서득용(徐得龍)에게 둘째 딸은 이윤우(李潤雨, 1569~1634)에게 출가했다. 따라서 압로정기(狎鷺亭記)를 쓴 이원정(李元禎)은 채응린의 외증손(外曾孫)이 된다.

송담(松潭) 채응린(蔡應麟, 1529~1584) 선생은 28세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했음에도 사환(仕宦)의 뜻을 버리고 금호강변에 압로정과 소유정을 1561(명종16)년에 세웠고, 그곳을 강학도량으로 삼았다. 1597년 정유재란에 그 누정들이 소실되었고, 첫째 아들 이선길(李先吉)이 1609(광해군1)년에 소유정을 중건하고, 1655(효종6)년에 압로정도 중건했다. 1673(현종14)년에 촌사람(村漢)의 방화로 다시 소실, 1797(정조20)년에 송담의 8세손 이필훈(李必勳)에 의해 압로정만 재중건되었다. 현재는 초서 ‘소유정(小有亭)’ 편액, 송담의 ‘소유정원운(小有亭原韻)’, 차운시(次韻詩) 및 ‘압로정중수기(狎鷺亭重修記)’등 편액이 윗도리에 걸려 있다.
 

 
글·그림= 이대영<코리아미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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