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유리는 저체온증을 앓고 있다
모든 풍경을 보여주고 있는데정작 자신은 투명의 베일에 가려 있다안을 감출 수 있는 가면이 없어
밖과 안의 경계에 서서화들짝 놀라기만 하는 유리바깥으로만 촉각이 곤두세워진 유리 안에는
우리가 없어
북극의 풍경을 거느린 채 차갑게 얼어붙거나날아오는 돌멩이에 쉽게 깨어졌다투명해지도록 길들여진 틀 안의 일상울고 있는 밖은 보여주어도울고 있는 안은 보여준 적 없던 까닭에유리를 아는 만큼 유리를 아는 게 없었다
유리로 온전히 흐느낄 수 없어
유리를 믿은 만큼 우리에게서 멀어져
습관처럼 유리 앞에 서 있던 얼굴들로부터
유리된 기억으로 넘쳐나는 유리
꽃피우지 못한 난간을 견디고 있다
◇ 최지원= 2016년 《시산맥》등단. 《월간문학》 동시 신인상, 최치원 신인문학상, 16회 황금펜아동문학상. 출판진흥원 창작지원금수혜. 2023년 아르코 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동시집 『초승달 지팡이는 어디에 있을까?』, 시집 『얼음에서 새에게로』가 있음.
<해설> 시인은 유리에게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투명해지도록 길들여진 일상의 틀 안에 서 있는, 자신의 일면에 대하여 유리된 유리로 인식하면서, 어떤 풍경도 맘껏 담아내지 못하는 생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안을 감출 수 없는 유리, 저체온증을 앓고 있는 유리, 온전하게 흐느낄 수 없는 유리, 믿은 만큼 멀어지는 유리를 통해 북극이라는 냉랭한 현실을 읽고 있는 시인은 지금 자신이 꽃피우지 못하는 난간을 견디고 있다는, 어떤 견딤에 방점을 놓고 있다. 나보다 더 아픈 유리가 거기 있으니 유리가 유리를 눈물로 닦아주고 유리된 세계에서 환하게 걸어 나오시기를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