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검단동 ‘소유정’ 소재로 즉석 창가…투박한 예술성 돋보이네
[금호강 르네상스 시원을 찾아서] 검단동 ‘소유정’ 소재로 즉석 창가…투박한 예술성 돋보이네
  • 전상우
  • 승인 2023.09.1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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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노계의 ‘소유정가(小有亭歌)’ 더듬어 보면
노계 선생 1617년 창작 추정
자신 출생연도에 세워진 소유정
동갑지우라 여기고 즉흥 가창
맛깔난 문장과 호연지기 드러내
내용 중복·허술한 구성은 단점
금호강-압로정회화목
대구시 북구 검단동에 있는 압로정에 소유정 현판이 남아있다. 그림 이대영

◇면앙정가는 알고, 소유정가는 몰라

2022년도 ‘메가스타디(Mega-Study)’에서 대입 수능시험 특히 국어 고전 분야에서 송순(宋純, 1493 ~ 1582)의 ‘면앙정가’가 출제범위 40위이고 출제확률 39%라고 발표했다. 다시 말하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필수사항이다. 그런데 교육수도를 자랑하는 대구시민이, 검단동에 있는‘소유정(小有亭)’을 소재로 하는 ‘소유정가’라는 가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 문화도시 대구시민의 현주소다. 중국고대 한시를 달통하신 전문가조차도 ‘소유정가’는 초면이다. 왜냐고? 시험에 나오지 않았으니 “몰라도 돼!”다.

송순의 ‘면앙정가’는 ‘잡가’에 게재된 한글(國文) 가사로 전해졌다. 속칭 ‘무등곡(無等曲)’이라고도 한다. “인간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 업(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쐬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고, 밤은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고 사립문은 뉘 닫으며 떨어진 꽃은 뉘 쓸려뇨. 아침에 낫부거니 저녁이라 싫겠느냐. 오늘이 부족(不足)하니 내일이라 유여(有餘)하랴.”

그러나, 대구 문화시민이라면 적어도 ‘소유정가’ 즉 노계가사의 특징만은 알아야 체면이 설 것이다. 특징으로는 i) 영남유생답게 고사성어가 많다. 용안묘수(龍眼妙手), 운영천광(雲影川光), 어인어약(於刃魚躍), 천장지비(天藏地秘), 장한강동거(張翰江東去), 풍호영이귀(風乎詠而歸), 정치추풍(正値秋風), 자린은순, 수유우화(須臾羽化), 격양가(擊壤歌), 낙하재비(落霞齊飛), 부춘형승(富春形勝) 등. 노계 선생의 가사 밑바닥 흐름은 안빈낙도, 강호한정 및 충효 등의 유교적 핵심사상이 녹아내렸다. 파격적 감탄척사(感歎隻辭)가 많이 사용되어있는 것도 소유정가만이 가지는 특유한 감탄표현이다. ii) 동일구절이나 유사한 구절이 많이 들어 있다. “이시면 죽이요 업스면 굴물만졍(陋巷詞)”은 16회나 나오고 있다. 의미구조가 유사한 것도 11번이나 반복된다. 이런점을 보면 노계 선생이 몸소 고민해서 지었다. 창작장소와 시점을 봐서는 서상작가(書床作歌)이고 즉석창가(卽席唱歌)라는 점에서 매끄럽게 다듬지 않은 흔적이 많다. 오히려 투박하고 숨길수 없는 예술성이 돋보이고 있다.

iii) 창작연대는 1617(광해군9)년으로, 한강 정구 선생이 73세가 되는 해 1615년이다. 그가 온천욕행을 할 때 9월 4일 소유정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사상(泗上, 안강읍 청령리)으로 떠났다. 이 때 노계가 정구선생을 알현하고 사상으로 모시는 도중에, 노계 선생은 자신의 출생연도와 같은 해에 세워진 ‘소유정’을 동갑지우라고 생각했다. 늘 머릿속에 간직했던 가락을 즉흥가창으로 풀어내었다. 일설에는 노계 선생이 소유정을 방문하였을 때 송담 채응린의 아들 채선길이 요청하여 읊었다고도 한다.

iv)노계 선생의 다른 작품과 비교해 다른 특이점이 많다. 소유정의 빼어난 풍광과 요산요수·안빈낙도의 유생을 소재로 읊었다. 소유정의 풍경과 내력으로 앞머리를 풀이하는 모양이며, 봄날의 흥치(春興)와 가을풍경의 흥겨움(秋興), 태평성대와 성군만세를 희구함으로 끝을 낸다. 즉흥가사이기에 문장은 질박한 맛깔과 왕양대해의 호연지기를 드러내고 있으나, 유사한 내용의 중복과 구상이 치밀하지 못한 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v) 239구, 116행으로 파격적인 구문이 19개나 있다. 감탄척사로는 “하물며 팔공산 건너보니 높을락(노프락) 낮을락”이 중간 부분에 들어가는 5음보 가사의 특징을 보인다. “앞서락 뒤서락 오오 삼삼이 이백과 두보 시를 섞어 읊고(섯거읍고)”는 2음고 기저율격으로 하는 6음보 1행이 7회나 나온다. 이같이 미끄럽지 못함은 즉흥창가였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소유정 앞 “영남유생의 위풍당당” 한 그루를

당시 국한문혼용의 가사를 읽기는 어려워도 현대어로 번역한 글은 대구시민의 자긍심을 스스로 살린다는 의미에서 한 번 정도를 읽어 봄 직하여 일부를 소개한다면 : 서사 부분으로 “금호강 흐른 물이 십 리밖에 구비 되어, 구뿔거리며 을자(乙字)로 모래밭에 비껴 흘려, 천 길 절벽 아래 뭇 물고기 모이듯이, 비슬산 한 줄기 동쪽으로 뻗어 있어, 가던 용이 머무는 듯 강나루에 둘려거늘, 소유정 두세 칸을 바위 기대어 열어 내니, 봉래산 선각을 새로 옮겨 내어온 듯, 용면의 솜씨인들 이같이 그럴런가. 악양루(岳陽樓)를 비친 달과 같은 빛으로 밝았으니, 뉘 형인지 뉘 아우인지 모르노라. 등자경(藤子京)이 살았던들 필연 한번 다투었으리. 엊그제 이 경치를 남의 손에 빠앗기더니. 천운이 다시 바뀌어 옛 주인에 돌아오니. 산하는 옛 그대로이고, 경치는 새로웠다. 물 위를 날아가는 갈매기와 해오라기, 계세봉(繼世逢, 이어져 세상에 만남)이 되었구나.”

“아침 꽃과 저녁달에 시 읊기를 일을 삼아. 눈 가득 호산(好山)의 경치를 살펴보니. 천만 가지 모습이야 아마도 많다마는 범희문(范希文, 岳陽樓記) 없는데 뉘라서 다 쓸 것인가. 쓸 사람도 없으니 혼자 볼 뿐이로다. 낮술에서 막 깨어나 낚싯대를 둘러메고, 마음대로 거닐면서 낚시터로 건너오니 산 비는 잠깐 개어 햇볕을 내리쬐는데 강바람이 더디오니 수면이 더욱 맑다. 낙수 이천인들 이같이 맑을런가. 깊은 돌이 다 보이니 고기 수를 알리로다. 고기도 낯이 익어 나를 보고 반기는가. 놀랠 줄을 모르거든 차마 어이 낚을 손가. 낚시 마치고 물가 앉아 물고기와 벗이 되어 구름 그림자 하늘빛이 어리어 떨어지니 물고기 뛰어오르고 솔개가 날아감(鳶飛魚躍)을 구름 속에서 보는구나.”

달구벌이란 ‘하늘이 비밀리 감춰두었던 땅(天藏地秘)’이라는 사실을 알고자, “하늘이 아끼고 땅이 감추어 나를 주려 남겼도다. 다툴이 없으니 다만 나만 두고 즐기도다. 어질면 산이 좋고 지혜로우면 물 좋다 하니, 어찌 이른 말씀인가. 불 품 없는 이 몸이 어짊을 알랴마는, 산수에 벽이 있으니 늙을수록 더해간다. 저 귀한 삼정승과 이 강산을 바꿀 소냐. 이렇게 미친 마음 웃을 이 많다마는 아무리 웃어도 나는 좋게 여기노라. 이러저리 옮겨 사니 가진 것이 얼마이리. 시골 늙은이 남은 생애 많다야 할까마는 조상 그리며 제사를 정성껏 지낸 후에 있으면 죽이요, 없으면 굶을망정 그 밖에 남은 일은 조금이나 바랄 소냐.”

마치 금호강심(琴湖江心)의 꽃 섬에 들어온 황홀경 속에서 옛 선비들의 선유를 상상하면, “이끼 낀 넓은 돌을 높이 베고 누었으니, 복희씨(伏羲氏)의 세상을 오늘 다시 보는구나. 어느넛 잠이 들어 뱃노래에 깨어나니 가을 달이 강에 내려앉아 밤빛을 잃었거늘 반쯤 취해 시 읊으며 배 위로 건너오니. 물결 위에 배를 타고 달 아래 앉았으니, 문득 의심하기를 월궁(月宮)으로 올라간 듯 세상 밖 기이한 풍경 참람(僭濫)하게 보이누나. 정경을 다툰다면 내 분수로 두랴마는, 임자 없어 금하지 않아 나만 둔 가 여기노라. 놀기를 욕심내어 돌아갈 줄 잊었도다. 아이야, 닻 들어라, 만조에 띄어 가자. 푸른 줄풀잎 위로 강바람이 짐짓 일어…”

모두가 희구(希求)하는바 “이 강산은 뉘 땅인가, 성주(聖主)의 땅이로세. 성주의 신하 됨을 씀 직도 하다마는. 이 몸이 어리석어도 직설이 되리런가. 태평성대 가르침에 모두 버린 사람 되어 가을 달 봄바람에 시비 없이 누었구나. 아마도 이 몸이 성은도 망글할사. 백번을 죽어도 갚을 일이 어려워라. 부귀함이 길이 달라 못 모시고 물러서도 성주(聖主) 향함 작은 정성 갈수록 새롭구나. 평생에 품은 뜻을 비나이다. 하느님께. 북해수 마르도록 우리 성주 만세 누리소서. 요임금의 하늘과 순임금의 해를 매번 보게 해주소서. 모든백성들이 격양가를 부르게 하소서. 이 몸은 강가의 정자에서 풍월 읊으며 늙을 줄을 모르리라”
 

 

글=권택성 코리아미래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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