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온전한 집중의 순간
[문화칼럼] 온전한 집중의 순간
  • 승인 2023.09.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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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아마 모두들 이런 경험들이 있을 것 같다. 가까운 지인들과 어울려 이름난 맛 집을 찾아, 기다리던 음식들을 맞이해서 모두들 맛있게 먹는 순간 누군가에게서 이런 말이 들린다. “좋네! 그런데 이 음식 거기 가면 진짜 최고다. 다음엔 그리로 가보자” 물론 오랜만에 좋은사람들과 좋은 음식들을 함께한다는 가벼운 들뜸에 나오는 말이긴 하겠지만 초대한 사람을 약간 머쓱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지금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한 만족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나도 과거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순간 그 집 주인장께서 바로 나의 뒤에 서 계신 것이 아닌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진다. 그리고 나선 다시는 이런 투의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음식이든 향 좋은 차가 되었든 함께 나누는 그 순간에는, 그것에 집중해서 같이 음미 한다면 더 행복한 시간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대화를 나누다 가끔씩 만나게 되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은 함께 말을 이어가기가 참 힘든 대상이다. 먼저, 아직 동사까지는 가지도 않았고 겨우 주어만 운을 뗐을 뿐인데 말을 자르곤 “아! 그거…”를 시작으로 장황한 설명이 이어지거나 “나 그 사람 잘 아는데 나랑은 이런 관계야” 이런 식으로 주제를 산만하게 만들어 도대체 주고받는 대화를 할 수가 없다. 그 다음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끌고 가는 유형이다. 한마디 던지자 마자 “ 아! 그거 나도 해봤는데 …” 라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아 이야기 진도를 낼 수가 없다. 게다가 이런 유형들은 대체로 상대방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상대가 말하는 중에도 자기가 끼어들 틈만 노리고 있으니 편안히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 몸은 함께 있지만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그야말로 동상이몽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행사장에서 먼저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 반가이 손을 맞잡고 흔들지만 눈은 벌써 다음사람을 향하고 있을 때가 많다. 머리로야 눈을 마주보고 한두 마디라도 제대로 인사를 나누고 몸을 돌려야 하는 것을 알지만 여러 사람과 짧은 시간에 인사를 나누어야하기 때문에 급해진 마음에 그런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사를 나누는 이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나는 공감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인사와 대화를 통하여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온전한 집중의 시간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몽골 방문에서였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몽골 도착 다음날 있은 교황님과 가톨릭 성직자들과의 만남에서였다. 여든 후반의 나이에 건강 상태도 좋지 않아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하는 교황께서는 시차 때문에 많이 피곤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울란바토르의 주교좌성당에서 몽골 성당 관계자와 신자들과의 공식 행사 후 약 150여명의 성직자들과 한두 명씩 일일이 긴 시간에 걸쳐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아마 그날 그분들은 교황님과 매우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고 느꼈으리라 생각된다. 인사를 나눌 때,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농도는 모두에게 똑 같이 밀도가 매우 높아 보였다. 교황님께서는 당신께 인사를 드리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그 시간은 완전한 두 사람만의 특별한 순간으로 만드셨다. 모든 사람에게 관심과 추억의 공유 또는 당부의 말씀들을 매우 진지하고 침착하게 그리고 마음을 담아 나누는 모습을 보았다.

교황님의 이번 몽골 방문에 대한 첫 공통적 반응은 왜? 였다. 340만 인구의 0.05%에도 미치지 못하는, 겨우 1,400명 정도의 가톨릭 신자를 가진 나라 몽골, 그리고 국민의 절반이상이 불교를 믿지만 샤머니즘이 훨씬 뿌리깊이 박힌 나라. 이런 곳에 방문하시는 목적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였다. 하지만 이렇게 작은 공동체를 방문하는 것 자체가 종교의 가치를 웅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작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종교에 있어서 가장 상식적이고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는 일종의 반전의 깨달음을 이번에 선사하신 것 같다. 게다가 몽골 땅에 묻혀있던 작은 일들이 이번 방문을 계기로 살아나고 커지는 그런 역사들이 꿈틀 거리는 것 같다.

명상에서도 가르친다. 지금에 집중하라고…. 그러나 몸과 마음이 늘 바쁜, 어쩌면 바쁘다고 착각하는 우리는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이 아니라 그 다음을 바라보는 불일치를 범하면서 마음은 더 공허해진다. 지금 얼굴을 마주보는 사람과, 그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아름답고 풍요로운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몸은 그렇게 훈련되어 있지 못하다. ‘두 교황’이라는 영화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교황님께서 가장 낮은 곳을 찾아, 거기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온전한 집중의 시간을 몸소 만들어가는 모습을 먼발치에서나마 바라본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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