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밤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간다
그곳에서
태양에 굶주린 부족들과 에르미타주 동굴 잔디 정원에 드러눕는다
온 세상 모든 밤에다 불을 켜고
먼 길을 데리고 온 생의 연민을 바짝 말린다
이곳은 백야의 도시
불면이 합법화되어 누구도 잠들 수 없는,
몇 며칠 뜬눈으로 보낸 도스토옙스키와
술병을 마저 비우는 동안
툰드라의 얼음장은 조금 더 두꺼워졌다
우리를 떠나간 양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아
지팡이로 얼음장을 콕콕 찧으며 양의 이름을 부르는데
북두칠성이
국자 모양의 긴 팔을 늘어뜨려
자꾸만 내 잠의 양수를 퍼 올린다
△ 임경남= 2005년 《문학예술》 등단. 2022년 시집 『기압골의 서쪽은 맑거나 맛있거나』 출간.
2022년 세종 우수도서 선정. 2022년 자기계발서 『나 데리고 잘 사는 법』 출간
<해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북두칠성이 볼 수 있다는 것? 왜 하필 북두칠성인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을까만은 불면이 깊어 잠들지 못하는 밤에는 어딘들 못 가랴! 눈을 감아도 다 보이는, 혼재된 기억들과 상상들은 도스토옙스키를 불러 함께 술을 마시고 툰드라의 얼음장에 누워 곰을 재우는 노래도 불러 줄 수 있다. 시인의 상상력을 거침없이 활달하여 떠나간 양으로는 모자라 태양에 모자란 부족의 일원인 나를 불러 에르미타주 동굴 잔디 정원에 드러눕자고 할 것도 같은, 왠지 물 흐르듯 친숙한 문체가 지금 내가 바라보는 칠성의 하늘을 흠뻑 적시고 있다. 잠들지 못하는 어떤 이유가 되어….
-<박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