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달리는 개의 기분
[좋은 시를 찾아서] 달리는 개의 기분
  • 승인 2023.09.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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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시인

뺑소니치는 저 은빛 승용차를 쫓아

발바닥에 불이 붙도록 달리던 개

뚝, 멈추고 멀어지는 차를 망연히 바라본다

버려지던 순간에도 웃어주던

슬픔 같은 까만 눈동자를

그대는 기억하는가!

사랑과 충성을 맹세하던 맹목의 날들을

거세당한 야성을, 자조 섞인 울음을

뒷다리 번쩍 쳐들고

탈탈 털어버리는

가변차선에 고인 핏물인 듯

반인반견反人反犬의 슬픈 짐승들이

죽을힘을 다해 컹컹, 울부짖는

배신의 저물녘.

◇김현주= 2007년 ‘시선’ 등단. 시집으로 ‘페르시안 석류’,‘好好해줄게’,‘유채꽃 광장의 증언’ 인천문화재단 및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등.

<해설> 시 속의 달리는 개는 버려짐에도, 버려졌음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어떤 미련 때문에 더 슬픈 개로 그려지고 있다. 반은 개이고 반은 인간이면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은색 승용차를 몰고 달아가는 저 인간은 어쩌면 처음에는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온 그런 인간이었을 터, 개만도 못한 인간을 풍자적으로 그려놓은 시이다. 시에 등장하는 등가물들의 경우 대개는 의인화를 위해 빌려온 객관적 상관물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인간의 또 다른 모습에 영향을 주기 위한, 묘사를 돕기 위한 어떤 역할이 전부일 수 있는데, 그것도 배신으로 골수까지 씁쓸한 개가 달리는 기분과 유사한 경험을 맛본 시의 독자라면 이 시는 큰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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