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갑과 을
[대구논단] 갑과 을
  • 승인 2023.09.2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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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해방 후 우리나라 교실은 선생님이 갑이고 학부모가 을이었다.

A의 집은 마당이 넓은 집이다. 장독대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들이 담긴 항아리로 채워졌고 항아리는 늘 반질반질하였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동네에 자자했다. 엄마는 겨울 김치를 했다. 동네 아줌마들이 맛 좋은 김치라며 입맛을 다셨다. 엄마는 그때마다 싱글벙글하였다. 엄마는 김치 항아리를 소중히 끌어안고 수업이 끝난 A의 교실로 쳐들어갔다. “선생님 오시면 말씀드려, 알지? 꼭”. A는 우리 반의 잘사는 아이들의 어머니가 그럴싸한 포장을 갖춘 선물을 선생님에게 드리던 것이 생각났다. 김치를 항아리에 담아온 엄마가 못마땅하고 부끄러웠다. ‘매일 먹는 김치는 왜 주는 건데’ A는 교실에서 도망치듯 나와 너른 운동장을 가로질러 마구 달렸다.

A는 극성스러운 엄마 밑에서 학교에 다녔지만, 일상화된 체벌, 수업 중 교실 뒤나 복도에 서 있기, 벌로 변소 청소하기, 학반 전체 단체 기합받기 등을 당연한 듯 겪으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선생님에게 맞은 날은 오히려 엄마 아버지가 야단이다. ‘선생님 더 때려주이소’ ‘선생님만 믿니 더’

당시 선생님들의 열정은 대단했다. 누가 수당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전교 일제고사가 있으면 전등불을 켜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교실을 쩡쩡 울렸다. 시군별로 ○○대회가 있으면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달리고, 그림 그리고, 악기 연주를 하느라 학교가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집에 가면 소 꼴을 베고, 동생을 업었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식구들과 같이 먹을 줄 알았고, 동생과 과일을 반쪽씩 나누어 먹었다. 농사 철에는 부모님의 일손을 도왔고, 땔감을 하러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갔다. 아이들은 학교와 가정에서 책임감을 알았고, 협동할 줄 알고, 나눌 줄 알았으며,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할 줄 알았다. 영국에서 우리나라 교육 제도가 모범적이라며 시찰을 왔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학교는 학부모가 갑이 되고 선생님이 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B의 엄마를 학교로 부를까 했는데. B의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다. B의 엄마는 복도에서 만난 담임 선생님을 힐끗 쳐다보고는 교장실로 들어갔다. 갑이 된 엄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조금 후 교감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을 상담실로 불렀다. B의 엄마가 전문 상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담임 선생님을 맞은편 학생 자리에 앉도록 손짓했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바뀐 기분이다. 담임 선생님은 저항을 느꼈지만 참았다. 담임 선생님은 머뭇거리다 먼저 말을 꺼냈다. 최대한 밝게 웃으려고 굳은 얼굴을 폈다. “B가 수학 수업에 방만한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B가 수학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집중은 고사하고 늘 딴짓을 했다. 선생님 시선을 외면 한 채 엉덩이에 종기가 돋은 듯 들썩거렸다. 책상에 이마를 얹고 잠을 자기도 했다. 초등 5학년이 수학을 포기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어제 수학 시간이다. 2학년 수준 구구단만 알면 풀 수 있는 문제를 A는 헤매고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과목이 엉망인 것은 아니다. 다른 과목은 학급에서 최상위이다. 점심 식사 후 담임은 A를 불러 수학 기초지도를 했다. 철수의 반응은 소귀에 경 읽기였다. 철수는 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오후 수업도 듣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

B의 부모는 담임 선생님을 아동 학대 혐의로 고소했다. 공개적으로 수학 문제를 풀게 해서 망신을 주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엄마들이 갑이 된 이유만은 아니지만, 아이들은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않았다. 선생님 통제에 반항했다. 흉기로 선생님을 협박까지 한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제어할 방법이 없다. 아이들은 모든 사회가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세상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고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남과 나눌 줄 모르고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지 않게 되었다. 모두가 공주고 왕자인 아이들은 아기에게 자신을 희생할 용기가 없게 되었다. 이기주의는 생존 보존의 본능을 넘어섰다. 저출산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대책 예산은 2016년 이후 200조 원 이상 집행되었고, 2024년 예산도 전년도 대비 25.3% 상승하였다.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지만, 출산율은 오히려 0.7명 대로 예산 증가와 반비례하고 있다.

저출산 대책은 몇 푼의 돈으로 조급하게 할 것이 아니라 1970년대 가정교육, 학교 교육으로 뒤돌아가는 획기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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