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계단
[좋은 시를 찾아서] 계단
  • 승인 2023.09.21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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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예 시인

두 번의 이별이 구겨져 언니의 계단이 되었다

가파른 것들은 떨어진다

층계참

가나초콜렛이 썩는

구체적인

연애의 구조

쉬지 않고 갉아대는 나무좀에게

계단의 질료가 내어주는 친절이 있다

비가 계단을 따라 15cm씩 흘러내리면

연애도 15cm씩 흘러내렸다

가나초콜렛처럼 잘라먹던 계단과

초콜릿처럼 입안에서 녹여 먹던

헤어짐의 구조는 같지만

계단은 몸 밖으로 자라는 구조였고

초콜릿은 몸 안으로 사라졌다

녹는 것은 모두 달콤하다, 와

달콤한 것은 모두 녹는다, 는

구조가 다른 말

이별할 때마다 언니는 계단을 걸었지만

네 번째 이별이 구겨져 언니의 계단은 늘어났고

비는 15cm씩 더 멀리 흘러내렸다

◇이승예= 2015년 계간 ‘발견’으로 등단. 시집 ‘나이스 데이’, ‘언제 밥이나 한번 먹어요’가 있음.

<해설> 놀라운 몇 개의 비유와 직관이 이 시를 끝까지 긴장으로 몰고 간다. “이별이 구겨져 계단이 되었다”, “가파른 것들은 떨어진다”, “가나초콜렛이 썩는/ 구체적인/ 연애의 구조” 헤어짐에 있어 계단을 몸 밖으로 사라지는 구조라는 것과 초콜릿은 몸 안으로 달콤하게 녹아든다는 것에 차이는 실로 큰 차이가 아닌가? 시인이 굳이 말하려는 것이 언니는 아닐 테지만, 구조가 다른 말 “녹는 것은 모두 달콤하다, 와 달콤한 것은 모두 녹는다, 는”에서 알 수 있듯이 알 수 없는 어떤 길이 15cm의 거리 밖에서 비는 반복되는 희비를 거듭할 것이고, 그런 게 또한 인생이 아닐지?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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