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를 찾아서] 창신 빌라
[좋은시를 찾아서] 창신 빌라
  • 승인 2023.09.2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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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필

창문을 닦으면 다시 생겨나는 구름이 있다

태풍 매미로 어미 아비 잃은 일 층 봉구슈퍼 사내아이들이 좁아터진 방에서 창문을 벌컥 열어두고 잠을 잔다 팔뚝을 서로 포개놓고 배때기를 막 긁으면서 쓰러져 자고 있다 별 만 촉짜리 방파제 호텔을 불쑥 찾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름 피부인 윤슬을 숟가락으로 파먹고 테트라포드에 종일 앉아 있는,

길다란 목을 가진 저녁

어디선가 소독차 소리가

꽉 막힌 계단을 뚫고 지나갈 때

나는 버스 정류장에 서서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김승필= 2019년 계간《시와정신》등단. 시집『옆구리를 수거하다』(황금알, 2021) 청소년 고전『우리 고전 캐릭터의 모든 것』, 청소년 문학『국어 선생님의 시 배달』에 참여. 2021년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

<해설> 아파트가 아닌 빌라가 이 시의 배경이다. 그 집에서는 장마와 잇닿은 바다가 있고, 왠지 배가 고플 듯한 저녁이 있다. 1연에서 이미 어떤 암시가 느껴지면서 태풍에 어미와 아비를 잃은 아이들이 2연에 적나라한 실감으로 등장한다. 시인이 머물다 건너온 그곳은 어느 한때의 풍경일 수도 있으며, 그곳은 별 만 촉짜리 방파제 호텔이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주름 피부인 윤슬을 숟가락으로 파먹고”는 이 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동적인 문장이 아닌가? 시인이 기억 속의 영상을 심리적으로 조립해나가는 과정은 마지막 연에서 현재의 시점에 버스 정류장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저녁이 왜 기다란 목인지가 더 선명하게, 아프게 그려진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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