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물 위에 쓴 약속
[수요칼럼] 물 위에 쓴 약속
  • 승인 2023.09.2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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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광 대구경북소비자연맹 정책실장·경제학 박사
정치인의 약속은 ‘물 위에 쓴다’라고 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유권자인 국민이 정치인의 약속을 잘 믿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린다. 정치인은 선거 때만 되면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공약을 남발한다. 선거가 끝나면 지킬 수 있는 공약보다는 지킬 수 없는 공약이 더 많게 된다. 결국 지킬 수 없는 공약은 유권자와의 약속을 저버리게 된다. 어떻게 보면 약속에 대한 부담은 정치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거짓말쟁이라 비판하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말(약속)을 진중하게 해야 되고, 한 말에 대해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지켜야 한다. 왜냐하면 국민과 공개적으로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번 내뱉은 말을 잘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 먼저, 가능한 지킬 수 있는 말을 해야 하며, 말을 했으면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만약 한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면, 그 이유를 진솔하게 밝혀야 한다. 구렁이 담 넘어 가듯 넘어간다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게 된다.

정치인의 약속은 주로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정치권의 블랙홀 역할을 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말과 행동에 대해 국민들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먼저 이 대표는 지난 8월 31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쇄신 등을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9월 18일에는 건강 악화로 녹색병원으로 옮겨졌으며, 단식 24일째인 23일에 중단했다.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전두환 정부시절 김영삼 전대통령의 단식과 비교된다. 당시 김 전대통령은 구속 인사 석방, 해직 교수 복직, 언론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23일 동안에 걸친 김 전대통령의 단식은 언론 통제를 받던 당시 정치현안으로 언급되었으며, 많은 국민들부터 지지를 받았다.

반면 이재명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식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이를 통해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 그룹 대북 송금 의혹 등으로 인한 구속을 피하기 위한 방탄단식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의 단식은 야구에서 빈볼과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빈볼이란 투수가 고의로 상대 타자를 향해 던지는 공을 말한다. 빈볼을 던지는 이유는 대부분 상대 팀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지만, 간혹 팀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 던지는 경우도 있다. 빈볼을 던지면 모든 선수는 덕아웃를 벗어나 그라운드로 달려 나가야 된다. 만약 나가지 않으면 벌금을 물게 된다.

다음은 이재명 대표가 말로 한 약속이다. 이재명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 커지면서, 지난 6월 19일 ‘저에 대한 정치수사에 대한 불체포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리고 7월 18일에는 민주당 의원 168명 전원이 불체포특권 포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9월 18일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이 대표는 SNS를 통해 “명백히 불법 부당한 이번 체포동의안의 가결은 정치검찰의 공직 수사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부결을 촉구했다. 이것은 자신이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행동이다.

이재명 대표는 명분이 약한 단식을 통해 극성 지지층 결집에는 성공했지만 21일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대한 투표 결과 재적 295명 가운데 찬성 149표, 반대 136표, 기권 6표, 무효 4표로 가결됐다. 민주당 의석은 168석, 민주당출신 무소속 의원 7명이다. 따라서 민주당에서만 최소 28명이 가결에 표를 던졌다. 내면적으로는 다음 총선에 대한 공천권에 대한 갈등이며, 외부적으로는 이 대표의 부결 요청에 대한 반발과 정기국회까지 이어진 사법 리스크에 대한 당내 피로감, 그리고 당의 위기감 때문이라고 한다.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여당 대통령 후보를 거쳐 야당 대표를 맡고 있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기로에 서 있다. 이처럼 유력 정치인이 가벼운 말과 행동으로 다수의 국민을 실망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정치가 특정 지역과 특정 지지계층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의 경우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한 정당의 대표를 맡고 있지만 동상이몽의 성격이 강하다. 이 대표는 경기도에 정치적 뿌리를 둔 영남 출신이다. 지역적인 기반이 약한 고리를 보완하기 위해 팬덤 정치에 올인한 결과 점점 고립의 길을 걷게 된다. 이처럼 실체가 없는 편견에 기반한 정치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큰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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