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주문식교육의 창안자 최달곤 설립자
[대구논단] 주문식교육의 창안자 최달곤 설립자
  • 승인 2023.10.04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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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복 영진전문대학교 명예교수 지방자치연구소장
손녀가 영진전문대학 3년 졸업 후 일본에 취업했다. 벌써 1년 반이나 된다. 아이가 거주하는 원룸은 한사람이 생활하기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다. 옛 ‘축소지향의 일본’ 모습이 아니었다. 일본 생활이 제 스타일에 맞는다며 자립에 자신감을 보이는 손녀의 결단에 마음이 놓였다. 무엇보다 주경야독으로 일본어과 3년에 편입한 것이 대견스러웠다. 가족 6명이 함께 한 일본 자유여행에서 손녀의 일본어 구사 능력이 돋보였다.

영진전문대학은 571명의 취업자를 일본에 보냈다. 일본기업 몇 곳에는 사내에 영진동문회가 꾸려져 있다고 한다. 사람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자기 뜻을 펼치는가에 따라 개인의 성공은 물론 국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필자는 영진전문대 교수를 하면서 최달곤 학장과 좋은 인간관계에 있었다. 그는 교육자이기에 앞서 뛰어난 전문적 경영인이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남다른 혜안이 있었다. 1991년, 30년간 중단되었던 지방자치제가 부활될 것을 예견하여 대학 부설 ‘지방자치연구소’를 설립케 하고 연구소 활동을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낌없이 해 주는 그를 보면서 경영 능력을 간파할 수 있었다. 지방자치연구소 설립은 대학과 지역사회에 상당한 플러스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

영진전문대학교 정문을 들어서면 ‘주문식 교육의 발상지’라고 쓰인 큰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영진전문대학에서 최달곤 학장이 주문식 교육 방법을 창안했다는 것이다. 전문대학에서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고 학생들의 실습 능력이 뛰어나도 기업에서는 6개월을 견습 기간으로 두는 등 대학과 학생들을 불신하는 풍조가 있었다. ‘주문식교육’은 졸업과 동시에 학생들이 현장에서 기계를 다루고 작업을 거침없이 할 수 있도록 만든 직업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기업이 요구하는 커리큐럼을 참고, 교육시켜 졸업과 동시에 현장 투입이 가능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기업 인재의 수요와 공급의 적정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대학의 노력과 학생들의 적극 참여로 ’주문식 교육‘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정부의 관심, 많은 대학들도 맞춤형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주문식 교육‘ 방법에 접근하는 등 일대 교육개혁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지방의 전문대학 학장이 ‘주문식교육’을 창안한 것은 우연이 아닌 최달곤 학장의 혼과 피와 땀이 엉킨 필연적 사건이다. 최달곤 학장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대학직업교육의 쇄신을 위해 태어난 시대적 교육 레전드였다. 영진전문대학의 ‘주문식교육’에 대한 정부 당국의 관심은 더 없이 신뢰적이다. 이 대학은 한국능률협회 컨설팅(KMAC)으로부터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전문대 부문에서 1위로 선정되었다. 2012년 전문대 조사가 도입된 이후 12년 연속으로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학이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취업률이다. 학생 10명 중 7~8명이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취직한 졸업자가 많은 점이다. 해외취업특별반을 만들어 전자, 전기, 경영, 관광 등 다양한 분야로 취업처를 넓혀가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크게 알려져 각국의 유학생들이 많다. 켐퍼스 어디서나 외국인을 만날 수 있고 학생 상호 간의 국제적 안목을 키울 수 있어 늘 활기차다. 이처럼 다각적인 대학의 발전은 ‘주문식 교육’이 그 씨앗이란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대학은 취업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기대와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항상 모든 면에서 연구하고 앞서가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영진전문대학의 또 다른 장점은 학생 모집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려운 대학의 환경변화에도 입학생이 스스로 찾아오는 대학으로 평가받으면서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최달곤 학장이 소천하셨다. 앞서 지방자치연구소 설립에 깊게 자문을 해 주신 유종해 교수도 연초에 돌아가셨다. 존경과 사숙의 대상인 두 분을 잃은 필자의 마음은 지금 편치가 않다.

최달곤 영진교육재단 설립자가 살아 계실 때 나는 자주 안부 전화를 드렸다. 전화를 제 때에 받지 못하면 꼭 전화를 해 주시는 매너 있는 신사분이다. 그가 정리한 휴대폰에 내 전화번호가 끝까지 찍혀 있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 속 깊은 정에 눈물을 삼킨다. 먼저 가셔서 기다리고 계신 사모님과 좋은 곳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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