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추석 유감
[대구논단] 추석 유감
  • 승인 2023.10.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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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추석은 올해도 여지없이 천덕꾸러기다. 추석에 올리는 ‘차례’가 대접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위의 사람 중에는 ‘아직도 차례를 지내느냐’ 고 의아한 표정을 짓기도 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아직도….’ 라고 말하는 이들이 확연히 늘어나고 있다.

평소 가까이 지내는 지인의 집안도 그렇다. 2021년 추석에 둘째 집에서 성묘(시사)와 차례를 함께 지내더니만, 올해에는 막내 집마저 성묫길에 차례를 지내버렸다. 차례는 가을 추수를 마치고 조상님께 햇곡식으로 감사의 예를 표하는 것이고, 가을 성묘(시사)는 겨울 추위를 맞아 산소를 찾아 돌보는 것이다.

그런데 집안 형제들이 쉬운 길만 택하니 지인은 허망할 수밖에 없다.

어떤 언론기관에서 발표한 통계자료가 ‘추석 차례’의 위치를 방증한다.

“올해 추석에 차례를 지낼 계획인가?”에 대한 설문에서, 절반이 넘는 55.4%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라고 답했다. 이중 남성이 49.7% 여성은 61.2%였다. 차례를 지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32.9%는 ‘요즘 시대와 맞지 않아서’ 26.6%는 ‘가사노동이 부담되어서’ 22.8%는 ‘고물가로 인한 차례비용이 버거워서’이다.

통계에서 보듯이 차례를 지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요즘 시대에 맞지 않아서’이다. 조상의 고마움에 감사하고 흠모하는 정성을 표하는 의식이, 다른 사람이 지내지 않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뒤떨어진다는 생각 때문이라니 우리가 평소 조상을 어떤 수준에서, 어떤 가치로 자리매김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 통계이다.

우리가 이래도 되는가? 조상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어느 철학자나 과학자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확실하게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슬퍼하지 않고 통을 두드리며 노래하였다. 애도는 하지 못할지언정 이건 너무 심한 짓거리가 아닌가. 아내의 죽음을 반길 정도로 그간 아내와 심하게 불화하며 살았단 말인가. 그럴 리가. 사람들은 물었다. 장자는 대꾸했다.

사람이 죽으면 태어나기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법이다. 아내가 태어나기 이전, 태어나기 이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형태가 없던 이전, 형태를 갖추기 이전 정도가 아니라 아예 기(氣)가 없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신비의 한가운데서 변화가 일어나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하여(부모 몸에 들어가) 형태가 생기고, 형태가 변하여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또 변하여 아내는 죽었다. 이는 춘하추동 사계절의 진행과 같다. 죽은 사람들은 조용히 크나큰 공간에서 쉬고 있다. 기를 기다리고 있다.

결국은 삶과 죽음이 같은 것이다. 슬퍼 소리 내어 운다는 것,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울기를 그만두었네. 장자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저항이 있지만, 조상신이 없다는 명제에 반론의 근거는 된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조상 없는 자손이 없다. 제사는 나를 존재하게 해준 조상을 예로써 모시는 마음가짐이다. 특히 현대는 핵가족시대이다. 혈육의 정을 나눌 기회가 부족하다. 제사는 가족이 모여서 혈육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고립되어 가는 사회생활에서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제사가 필요한 이유이다.

흔히 명절 때만 되면 여성의 가사노동 문제가 대두된다. 과연 명절에 여성이 혹사당할 정도로 제사상(차례상) 차리기가 힘든 노동인가? 명절 무렵이 되면 신문, 방송에서 명문가 종손이나 유학자들의 인터뷰 기사가 보도된다. 키워드는 차례상 간소화이다.

그들은 강조한다. 예부터 내려오는 조율이시, 좌포우혜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명태전, 육전을 부치고, 문어 삶고, 나물국 끓여 올리는 것이 기본이 아니다. 제사상을 간소화하여야 한다. 평소에 고인이 즐겨 먹던 음식 한두 가지면 된다. 철 지난 음식을 찾는 것보다 제철 음식이 더 좋다. 한과, 전, 탕, 포, 어류, 쇠고기 등 구첩 반상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들의 의견은 의견으로 끝난다. 제사상은 변하지 않는다. 주부들의 노동이 가중된다는 여론은 그대로이다. 이는 제사를 주관하는 제주의 체면을 걱정하는 것이 원인이다. 죽은 사람은 음식을 가져가지 않는다. 흠향할 뿐이다. 모두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다. 음식을 적당히 마련하여 버리지 말아야 한다, 제사음식은 아이들도 먹지 않는다. 제사상을 획기적으로 현대화하여야 한다. 그리고 남녀가 함께 제사음식을 마련한다면 주부의 가사노동 스트레스는 없어질 것이다.

종교를 초월하여 신의 존재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조상신을 다시 생각해 보자. 이제 차례상 간소화는 선택을 넘어선 필수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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