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갈치젓갈
[좋은 시를 찾아서] 갈치젓갈
  • 승인 2023.10.1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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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희 시인


밥상에 올라온 한 토막 은갈치

살점 떼어 입에 넣지 않아도

짭쪼름하다



왕년에는 한가락 했다는

바다 냄새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나



소금 한 움큼에 염장 당하고

관 뚜껑 닫고

외롭다고 느껴본들

다시 헤엄칠 바다는, 멀기만 한 것을



밥상 위 누워서 곰곰이 잠긴

생각의 흐물한 살점을

마주 보는 일이란 뒷전의 슬픔인 것



밥맛 없을 때나 찾는 칼칼함에

고스란히 남겨진 것은

아래위 잘려 잎 떨군, 겨울 미루나무

빠른 손길이 훑고 지나간 것인지

바람든 뼛속이 시리다





◇정연희= ‘서정문학’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시집: ‘달빛 조각이 심장을 두드릴 때’가 있음.

<해설> 정연희 시인은 앞서 소개한 전기웅 시인에게 시를 배운 시인이다. 계보로 따지자면 나에게 있어 손녀 시인인 셈인데, 유유상종이라 했던가. 전기웅 시인만큼이나 따듯한 심성을 가진 시인이다. 시인의 사랑은 그 진동과 폭이 커서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먼 우주에까지 사랑의 향기를 풍긴다. 반면 예리한 직관 또한 만만치 않은데. 그 바탕에는 살아있는 오감을 통해 시적 소재들과의 소통을 이루려는 어떤 노력이 시의 맛을 더하고 있다. 일상의 밥상에 올라온 갈치젓갈을 죽은 갈치에서 산 갈치로 불러내는 상상력은 뒷전의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가 하면 잎 다 떨군 겨울 미루나무의 형상을 연결하므로 갈치젓갈이 된 갈치를 통해 자신의 저릿한 뼈를 공감각적으로 느끼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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