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차분한 품격
[문화칼럼] 차분한 품격
  • 승인 2023.10.11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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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어김없이 가을의 진객, 최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대구를 찾고 있다. 지난 주 월드오케스트라페스티벌이 시작 되었다. 시작이 아주 묵직했다. 런던의 빅5 중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와 쌍벽을 이루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PO)가 클래식 팬이라면 누구나 좋아할법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왔다. 첫 순서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을 들으며 떠오르는 문장, 박완서의 자전적 소설 ‘그 남자네 집’의 한 장면 “그래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남자와 이별의 즈음에 한 번의 포옹으로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순간! 길지 않은 첫 곡에서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까지 들만큼 완성도가 높은 연주였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테츨라프는 살짝 긴장한 듯 했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여유 속에 멋지게 풀어냈다. 교향곡과 오페라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축해가는 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는 유럽 출신 지휘자답게 혁신적 해석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음악을 만드는데 탁월하다는 느낌이다. 그와 LPO가 만들어낸 브람스 교향곡 1번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의 사운드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브람스가 무려 20년이나 걸려서 작곡한 교향곡1번을 베토벤 9번 교향곡을 이을만한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흔히들 10번 교향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큰 강물처럼 거침없이 흐르다 때로는 잔잔한 물결 같은 느낌의 곡을 더없이 아름답게 연주하여, 뜨거운 여름을 이겨낸 시민들에게 음악을 통한 큰 위로와 감동을 선사한 가을밤의 멋진 음악회였다. 듣는 내내 이런 호사스러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오늘 밤이면 또 하나의 감동적인 연주가 있을 것이다.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스위스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함께하는 공연이 열린다. 오늘의 음악회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꽉 찬 공연’이라고 말하고 싶다. 명장 ‘네메 예르비’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를 만들고 있다는 평을 듣는 ‘파보 예르비’ 나는 약 10년 전 처음 그의 공연을 접하자마자 바로 매료되었다. 그 스스로 우리만의 스피릿이 있다고 할 만큼 예르비가 지휘하는 도이치 캄머 필하모닉은 그들만의 특별한 정서가 있다. 그의 음악은 긴장과 이완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는 생각이 들만큼 나에게는 현란하고 드라마틱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자세, 입장하는 모습 그리고 협연자에게 보내는 단원들의 호응까지 도이치 캄머 필은 여타의 교향악단과는 다르게 언제나 따뜻하고 생동감이 넘쳤다.

그래서 나는 파보 예르비가 이끌고 있는 또 하나의 명문악단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가 언제나 궁금했다. 그리고 이번 연주는 대구에서 바이올린을 시작해 세계적 연주자로 성장해가는 김봄소리를 만날 수 있는 기쁨도 남다르리라 생각한다. 특히 그가 협연할 ‘닐센 바이올린 협주곡’은 자주 들을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우리의 감상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이며 그런 만큼 2부 순서는 상대적으로 익숙한 베토벤 5번 운명 교향곡이 예정되어 있다. 한마디로 지휘자, 협연자 그리고 레퍼토리까지 완벽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공연이 특별히 기대되는 이유다.

건축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상(2023)을 수상한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차분한 품격’을 말한다. ‘튀는 건축’보다 ‘시대와 사회에 녹아드는 건축’을 지향한다는 그는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 본사 사옥을 그런 철학을 담아 만들어 냈다.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그는 요즘 추세로 보면 단조롭고 심심해 보이는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건물이 오히려 도심 풍경을 완전히 바꾸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는다. 해체주의 건축의 선구자 프랭크 개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으로 모두들 그렇게 추구하는 시대다. 하지만 이런 흐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절제된 디자인의 건축세계를 통하여 내재적 가치를 만들어 나가는 치퍼필드의 용기와 성공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변화의 물결에 몸을 맡길 것인지 아니면 격동의 시대에도 자신만의 ‘차분한 품격’을 지키고 가꾸어 갈 것인지---예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라며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는 것만 같다.

지난 주 LPO의 음악을 들으며 참으로 행복했고 가슴에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리고 대구콘서트하우스라는 이런 멋진 공연장이 있음에 감사한 마음도 컸다. 대구의 공연장 인프라는 균형이 잘 갖춰져 있다. 오페라와 발레, 클래식 그리고 국악·무용·연극 이렇게 크게 3가닥으로 줄기를 잡고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콘서트하우스와 대구문화예술회관을 포진시킨 선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가까이서 세계적 오케스트라를 최적화된 음향을 갖춘 클래식 전용공연장에서 감상할 수 있음은 행복한 일이다. 이런 뛰어난 하드웨어에 걸맞은 내용을 채울 수 있는 수준만큼 도시경쟁력이 정비례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할 때 우리는 ‘차분한 품격’을 갖춘 도시라고 평가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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