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가자미
[좋은 시를 찾아서] 가자미
  • 승인 2023.10.1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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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서 시인

한로가 지나고 종아리가 시린 가을날

아내와 황톳길 걷고 갑동 보리밥집에 왔다

잘 구워져 바싹하게 익은 가자미 살을 발라내고

칼칼하게 볶아낸 제육 한 쌈에

갖은 나물 골고루 올려 청국장을 비빈다

가자미 근육은 몸이 앞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종아리의 피를 심장으로 복귀해주는 중력의 중심,

어젯밤 TV에서 가자미 근육 운동이 혈당에 좋다는 말에

혈당 장애가 있는 나는 솔깃해져

가자미는 분명 혈당에 좋을 거라 억측하고

아내의 가자미 살까지 빼앗아 먹는다

식이요법이 혈당에 효과 있다고 끼니마다 따져 먹는 나를

오른쪽으로 쏘아보던 아내가 쓸 듯이 접시를 밀어준다

뼈와 살을 떼어내다 반쪽이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진다

아내는 말없이 동동주를 따라주며 싱싱한 가자미눈을 한다

◇박수서=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등단, 시집 ‘날마다 날마다 생일’, ‘내 심장에 선인장 꽃이 피어서’, ‘갱년기 영애씨’외, 시와 창작 문학상 수상.

<해설> 생선인 가자미와 아내의 가자미 눈 사이에 이 시의 함축된 메시지가 있다. 아마도 신체의 일부 어딘가에 가자미 근육도 있는가 본데, 티비에 나온 운동요법도 그러했다며, 식탁에 올려진 아내의 가자미를 탐했으니, 참 시인은 엉뚱하기도 하다. 그런 남편이 건강해야 함을 아는 아내의 눈은 그냥 가자미의 눈이 아닌 싱싱한 가자미 눈이고 동동주까지 따라주고 있으니, 둘 사이의 밥상은 얼마나 친근하고 따스한가? 시가 사실적인데 바탕을 두면서도 익살스러움이 있다. 가자미는 자신에 살과 뼈를 분리하는 젓가락의 힘 앞에서 반쪽을 미끄러트려 접시 밖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아내와 남편의 사랑에 고스란히 포획되고 있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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