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를 찾아서] 고향집 부엌엔
[좋은 시를 찾아서] 고향집 부엌엔
  • 승인 2023.10.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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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연 시인

흰 수건 눌러 쓴 여인이

시커멓게 그을린

아궁이 앞에 앉아 있다

불이 붙기까지

부풀어 오른 볼로 풀무질하던

청솔가지 살라 밥 짓던 부엌

겹겹이 절어 붙은 세월

시집살이 매운 냄새가

엄마의 슬픈 눈물 자국이었던 거다

천정에 달려있다가

떨어져 내리는 그을음은 온통 먹빛

그래도 행복한 저녁 찾아오리란

믿음은 있었던 거다

허리 졸라맨 고단한 삶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알겠더라

시꺼멓게 말라버린 부뚜막 위에

엄마 이름 내 이름

나란히 새겨둔다

◇오상연= ‘서정문학’ 시인상으로 등단. 형상시학회 회원.

<해설> 고향 집 시꺼멓게 그을음 말라버린 부뚜막 위에 엄마 이름 내 이름 나란히 새겨둔다는 건, 현재 남긴 행위의 한 장면이다. 꺼멓게 그을린 부뚜막이란 이미지는 여인의 어떤 한 같은, 설움 같은 게 금방이라도 묻어날 것 만 같은 정황이다. 도입부의 흰 수건 둘러쓴 여인과 부엌의 검정이 주는 암울함은 흑백의 대비를 통해 더 선명해지고, 청솔가지 매운 냄새 등, 시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이 눈물의 시대를 살다 간, 엄마를 기억하고 떠올리는 모든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러한 회고적 서정을 과거의 이야기로 끝내지 않고, 나란히 이름을 쓰는 현재의 행위로 나타내는 걸로 보아, 이 시인은 미래의 삶을 개척해 나갈 어떤 역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겠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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