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
[문화칼럼]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
  • 승인 2023.10.25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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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김형국 칼럼니스트
최근 영화관을 찾았다가 우연히 다큐멘터리 영화만 잇따라 3편을 보게 되었다. 어지간한 드라마 장르보다 다큐 영화가 더 재미있다. 이번에 만난 영화는 묵직한 물음을 던지고, 군침이 돌게도 했다. 그리고 감동적인 영화였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이런 곳에까지 길을 찾아 나선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그야말로 다양한 영화를 감상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킴스 비디오

한때 시네필(Cinephile)의 성지였던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비디오 대여점 ‘킴스 비디오’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를 16mm 필름으로 구경하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김용만 씨는 미국으로 이민하여 영화를 전공했고 비디오 대여점까지 열게 되었다. ‘우리는 다르다’는 자부심으로,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독립예술영화를 중심으로 한 특출하고 희소성 가득한 5만5천여 개에 달하는 라인업을 구축하여 ‘영화학교 대신 킴스 비디오에 가면된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일궈냈다. 11개 지점, 쿠엔틴 타란티노, 스파이크 리 그리고 코엔 형제를 비롯한 25만 회원을 보유했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상대여 사업은 뒤안길로 접어들었고 그로인해 2008년 뉴욕 본점까지 문을 닫게 된다. 보유한 비디오를 잘 관리하고 가치 있게 사용 할 곳을 물색하여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살레미’라는 작은 도시에 컬렉션 전체를 기증하게 된다.

영화는 전설로 남은 킴스 비디오 창업자 ‘킴’과 이탈리아에 있는 비디오를 찾아 서울·이탈리아·뉴욕을 오가는 길을 그린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비디오는 보관조차 잘 되어있지 않고 ‘킴’은 수소문이 어렵다. 마침내 김용만 씨를 만나게 되고 이들의 노력으로 ‘살레미’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방치되어 있는 작품들을 뉴욕으로 되가져오는데 성공한다. 귀중한 영상으로 가득한 컬렉션을 다시 한 번 가치 있게 재생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통하여 영화로 행복한 세상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살레미’시에서는 ‘씨네 킴 페스티벌’을 만들어 영화를 통한 도시 중흥을 꾀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람빅: 시간과 열정의 맥주

이 영화는 매우 심심하지만 군침 돌게 하는 힘은 강하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연발효방식으로 만드는 벨기에 맥주 ‘람빅’에 관한 영화다. 벨기에 젠느 강 인근의 여러 람빅 제조업체를 찾아, 만드는 과정과 또는 이 일을 하게 된 경위 등에 대한 아주 드라이한 인터뷰가 영화의 전부다. 하지만 맥주를 대하는 그들의 엄격한 자세와 애정 그리고 자부심을 고즈넉하며 아름다운 그곳 풍경과 함께 지켜볼 수 있다. 람빅은 와인처럼 숙성 되어야 더 좋은 맛을 내고 보관만 잘 하면 아주 오랫동안 그 맛을 잃지 않는다. 일컬어 ‘맥덕(맥주 덕후)의 종착지’라는 람빅. 숙성 연도가 각기 다른 람빅을 배합해 만든 ‘괴즈’가 보다 대중적이다. 나는 지금 절주 상태로 지내지만 몇 년 전 맛본 괴즈 특유의 신맛, 풍부한맛이 영화 보는 내내 떠올라 군침을 삼켰다. 람빅은 술을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문화를 풍성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잘 설득한 영화다.



#서칭 포 슈가맨

2013년 제85회 미국 아카데미 장편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인 이 영화의 존재를 이번 재개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감동적인 영화다. 처음 들어본 ‘식스토 로드리게스’의 노래가 그렇고, 대단한 가수인 자신의 음악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누구보다 평화롭게 살아가는 그의 훌륭한 인격이 그랬다. 그리고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낸 사람들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처럼 모든 것이 실시간으로 소통되지 않는 세상이니까 만들어질 수 있는 이야기다. 미국에서는 철저히 외면 받은 가수, 대서양을 건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전설이 되어 있다. 정작 자신은 알지도 못한 채….

그곳에서는 무대에서 노래하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등 이미 고인이 되었다는 것이 기정사실로 되어있었으나 로드리게스의 흔적을 찾아 나선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여곡절 끝에 살아있는 그를 만나게 된다. 70년대 말에 호주에서도 비슷한 경로로 유명해진 그가 호주공연을 가진 후 무려 20년이나 지나 마침내 남아공에서 콘서트를 가지게 된다. 20명이라도 와서 노래를 들어주면 좋겠다는 걱정과는 달리 5천 객석은 가득차고 그는 언제나 그 무대에 있었던 듯이 너무나 평화롭게 무대를 이어간다. 역사에 남을 싱어송라이터로서 이 영화 개봉 후에 영국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메인 무대에도 섰지만 현실은 가난한 생활을 하는 히스패닉 계 노동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고, 책과 음악회, 전시 관람을 딸들과 함께 한다. 또한 공연으로 번 큰돈은 가족 친지에게 나누어주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원래의 모습으로 고요히 있다 올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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