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수록 갈증이 깊어진다
출렁거리는 우물 속
밑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두움
깊은 동굴에서 울려 나오는
멸종한 원시인들의 신음하는 소리
밤마다 늑대들이 떼로 몰려와
울컥울컥 핏덩이를 토한다
달하 높이곰 돋아사 멀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진 데를 드디올세라
아아, 내 가는 곳 저물세라*
사랑하기보다 먼저 헤어지고
헤어지기 전부터 아파한다
어두워지고도 식은 그림자는 남아
넝마처럼 흔들리며
아직도 떨고 있는 나를 보고 있다
마침내 우물물이 마르고
두레박이 밑바닥을 긁는 소리
황량한, 사랑의 아픈 환희
* 정읍사에서
◇김진희 =2022년 시와 세계 겨울호 등단.
<해설> 정읍사 가사를 재해석한 시인가? 마실수록 갈증이 깊어진다. 라고 첫 행이 시작되는 이 시는 암울한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출렁거리는 우물 속/ 밑바닥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두움”은 시인의 심정을 나타내는 어떤 고백체의 진술이다. 정신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을 두고, 사랑하기보다 먼저 헤어지고 헤어지기 전부터 아파하는 소심한 자신을 황량한 우물의 바닥으로 환치하고 있음은 다분히 비극적이다. 마치 한때 독일에서 유행한 신표현주의 회화작품을 보는 듯.
-박윤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