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논단] 노작 중심 교육
[대구논단] 노작 중심 교육
  • 승인 2023.11.02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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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환 전 경산시교육장
“퇴직 후 뭐 하노?” “뭐하긴, 이것저것 하다 안되면, 농사나 짓지” 퇴직자들의 이야기이다. 참말 그럴까? 귀농은 어쩌다 하는 것인가?

A와 B는 같은 아파트에 산다. 그들은 둘 다 인문계를 공부한 책상머리 서생 출신이다. 그들은 40여 년 공무원 생활하는 동안 오직 직장에만 충실했던 순종 직업인이다. 퇴직 후 마땅히 할 일이 없다. 공인 중계사, 자원봉사, 자영업, 창업 등 이것저것 생각해 보았다. 용기가 없거나 자본이 없고 아이디어도 부족했다. 그들은 농사를 짓기로 했다.

A는 농사 근처에도 가지 않은 초보자이다. 다른 사람 말을 듣고 호두나무를 심었다. 며칠 되지 않아서 잡초가 났다. 제초제로는 감당이 안 되었다. 부직포를 깔았다. 그러나 잡초는 용케도 빈틈을 찾아 올라왔다. 잡초와 싸움에서 밀렸다. 수령 3년이 넘자 나무에 병이 들기 시작했다. 밭의 물 빠짐이 원인이었다. 나무뿌리가 썩어들어갔다. 물길을 내었다. ‘오리 좀 벌레’ 등 각종 해충도 생겼다. 농약 치는 시기를 놓친 것이다. 나뭇가지가 썩고 부러졌다. 성한 나무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불길처럼 번지는 병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채소 모종도 죽었다. 비료를 너무 가까이 주었다나? 밭 관리를 하기 위해 낫질도 하고 삽질도 하였다. 손을 베고, 허리 병을 얻었다. 요령 부족이란다. 농기계를 사용하려 하니 재주가 없다. 좋지 않은 소식도 마을에 퍼졌다. 도시에서 귀농한 60대 아주머니가 경운기 사고로 죽었다. 퇴직한 경찰관이 트랙터 사고로 위독하다. 농기계가 두려워졌다. 밭은 잡초투성이고, 나무들은 자꾸 썩어 나자빠진다. 인간은 난관에 부닥치면 자기를 객관화 하고 미래에 대해 재고한다. A는 귀농을 포기하였다.

B는 그렇지 않았다. 잡초가 있으면 낫질을 곧잘 한다. 200평이나 되는 밭의 잡초를 예초기로 단숨에 처리한다. 비료도, 농약도 제때 잘 뿌린다. 선친에게 배웠단다. B는 초·중·고 재학 시 선친과 같이 농사를 지었다. 그는 A에게 처음 수확한 복숭아를 선물했다. B는 체험으로 농사 기술을 익힌 것이다. 그는 낫질도 삽질도 잘한다. 농사짓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농기계를 다룰 수 있었다. 몸으로 익혀서 배운 기능의 힘은 대단했다.

이제 우리는 100세 시대를 논한다. 100세 시대에 고령자(65세 이상)의 69%가 일자리를 희망한다. 그들은 자격증이 필요 없는 일자리를 원했고. 배움터 지킴이 등 학교 관련 일자리나 아파트 경비원 등을 선호한다. 귀촌 귀농도 많이 원한다. 그들 중 농사를 쉽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귀농은 노작교육을 거친 사람이 유리하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은 노작을 등한시 한다. 사회 역시 초·중·고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 교육이고, 좋은 대학을 나와 고급 공무원이나 일류기업에 취업하여 승진하는 시험 위주 교육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시작됐다. 나이 들어서까지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중요해졌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전문 자격을 갖춘 직업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정년 없는 자격증 시대이다. 농촌도 자격증 없는 자격증 시대이다. 농촌의 자격증은 노작교육이 출발점이다.

덴마크는 농업국가이다. 덴마크에서는 오전에는 교실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노작교육을 하는 학교가 많다. 우리나라 실업계 학교의 노작교육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더 높은 강도로 기능 교육을 하고 있다. 노작 내용은 주로 농업에 관한 것들이다. 노작교육을 통해 농업에 관한 지식, 기술, 태도를 함양하고 있다. 노작교육의 효과라고는 단정할 수 없지만, 덴마크 농업은 세계 제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의 의지가 없는지, 학부모의 요구를 무시하지 못하는지, 아직 노작 중심교육을 하는 학교가 없다. 그런 불리한 여건에서 환경교육이라는 명목으로 노작교육을 시도한 학교가 있다. 영천 ‘산 자연 중학교’이다.

영천시에 있는 ‘산 자연 중학교’는 전교생이 43명이다. 보통학교처럼 국·영·수 과목도 배우지만 시간표에 ‘노작’ ‘환경’ ‘생태’ 등 특별한 교과목이 편성되어 있다. 이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학교 텃밭에서 농사를 짓고 하천 녹조를 제거한다. ‘산 지연 중학교’는 가톨릭 신부가 만든 학교이다. ‘자연과 멀어졌던 아이들을 산과 들, 냇가로 돌려보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되찾게 한다.’는 것이 설립 목적이다. 아이들이 학교 텃밭에 나가 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사의 전 과정을 체험한다. 다행히 이 학교는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교육이다. 노작교육은 100세 시대를 대비할 수 있다. 노작 중심교육을 하는 학교가 증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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