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칼럼] 범물노인복지관 ‘희망 도토리 심는 사람들’
[화요칼럼] 범물노인복지관 ‘희망 도토리 심는 사람들’
  • 승인 2023.11.06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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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홍란 시인·희망정원사
희망은 밝고 환한 양초 불빛처럼/ 우리 인생의 행로를 장식하고 용기를 준다/ 밤의 어둠이 짙을수록 그 빛은 더욱 밝다.

-올리버 골드 스미스


삶에도 밀도가 있을까? 밀도를 일정한 면적이나 공간 속에 포함된 물질이나 대상의 빽빽한 정도라고 한다면 한 사람의 생, 인생의 밀도 또한 가늠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계측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내 삶의 밀도를 생각하며 지역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범물노인복지관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이다. 이미 프로그램명으로 주어진 사진자서전쓰기-‘돌아보니 봄이더라’, 이 사업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오래된 사진을 매개로 지나온 삶의 회고, 인생 의미 발견 등을 통해 긍정적 자아통합과 자기치유에 기여하고 미래지향적 삶으로 나아가게 하자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이라는 프로그램의 목적에 적합한 대상자는 기관에 마련된 기준에 따라 ‘수성구 거주 60세 이상 중,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장애인, 국가유공자, 독거노인 등’에게 우선 적용이었다. 나의 역할은 참여자로부터 삶의 궤적을 말하게 하고, 귀 기울여 듣고, 말씀을 잘 받아 읽고, 글을 쓰게 하고, 책으로 엮어내는 일이다. 맡은 일이 별일 아닐 것 같기도 하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일임을 직감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학력은 세계 어느 나라도 추종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4~50년 전만 해도 고등교육기관 졸업자 비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하물며 한국전쟁 이전 출생 세대의 경우는 매우 낮았다. 한국전쟁 후 유엔산하기구에서는 황폐화된 국가의 재건을 돕고, 특히 아동과 여성을 위한 긴급구호사업이 전개되었지만 그 기회의 손길이 모든 국민에게까지 미칠 수는 없었다. 특히, 여아 중에는 초등교육의 혜택조차 입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이러한 과거를 딛고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내가 내어놓는 봉사 시간과 노력은 매우 미약할 뿐이라고 나를 위무하기도 하였다.

먼저, 인고의 세월을 힘겹게 버텨온 선배들은 지난한 인생살이를 편하게 이야기하고, 후배들은 공감하며 듣고, 그들이 글로 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잘 완수해 보겠다는 바람을 담아 나는 ‘나’ 스스로에게 ‘희망정원사’라는 직함을 부여하고, 가슴에는 이름표까지 새겼다. 그리고 내 발걸음이 못 미치는 부분을 도와줄 분들도 모셨다. 그들을 ‘희망 도토리 심는 사람들’이라고 칭했다. 참여자들과 함께하며 우리는 ‘희망 도토리’를 찾아내고, 잘 심고 가꾸어, 튼실한 싹을 틔우게 될 것이다.

‘희망 도토리 심는 사람들’이란 표현은 프랑스 작가 장 지오노(Jean Giono, 1895~1970)에게서 빌어왔다. 그는 1895년,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에서 태어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다. 집안 사정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하였고, 은행원으로 18년 동안 일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5년여 동안 전쟁의 공포와 끔찍한 살육을 겪으며 열렬한 평화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그의 대표작품으로는 ‘나무를 심은 사람’ 등이 있다.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어느 황무지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작품의 배경은 1900년대의 공간, 프랑스 남부 황무지 마을이며 1인칭 작가 시점으로 전개된다. 고산지대를 여행하던 중 ‘나’는 헐벗고 단조로운 황무지를 지나게 된다. 눈조차 뜰 수 없을 만큼 세찬 바람이 불어오고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다. 그곳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서로 다투고 경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우연히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를 만난다. 쉰 다섯인 부피에는 아내와 아이를 잃고 고독하게 살지만, 틈틈이 도토리를 고르고 날마다 나무를 심고, 또 너도밤나무 재배법을 연구하며 묘목을 기르고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왜 시키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없는데 저렇게 묵묵히 혼자서 나무를 심는 것일까?

32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부피에를 만나게 된다. 두 번의 세계대전이라는 어지러운 가운데도 부피에는 여전히 나무를 심고 숲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은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없던 헐벗은 땅, 난폭하고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던 사람들의 마을이 아닌 ‘풍요’와 ‘행복’이 흐르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범물노인복지관 지역사회돌봄지원사업의 성료를 위해 ‘희망 도토리 심는 사람들’은 ‘부피에’처럼 틈틈이 ‘도토리’를 찾고 찾을 것이다. 고 작은 씨앗을 참여자들과 함께 심고 함께 가꾸어 아름다운 나무들이 사는 정원으러 거듭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얼싸안고 희망의 웃음소리 크게 울려 퍼지게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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