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경 개인전 갤러리모나…휴머니즘 회복 간절한 갈망 예술적 표현
정태경 개인전 갤러리모나…휴머니즘 회복 간절한 갈망 예술적 표현
  • 황인옥
  • 승인 2023.11.2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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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드로잉 뿌리는 ‘선조 정신’
방랑자도 되돌아가는 곳은 ‘집’
생각 많지만 화면엔 정제된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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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경 작가가 자신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모나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황인옥 기자

인간의 존엄이 온전히 지켜지는 세상은 이상향에 지나지 않는다.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개인주의의 팽배로 인간성 상실은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오래다. 그러나 정태경 작가는 여전히 존중과 배려가 살아있는 지극히 인간적인 세상을 꿈꾼다. 그는 인간성이 회복되는 세상은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미 그의 기억 속에는 그런 세상이 존재했다. 부산의 달동네 출신인 그는 정감 어린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했지만 정서적으로 따뜻한 보살핌을 경험했다.

그가 인간애의 회복이라는 가치에 다시금 주목한 것은 미술 대학 재학 중이었다. 대구 소재의 미술대학에 진학하면서 대구는 부산의 달동네와 달리 훨씬 도회적으로 다가왔다. 공동체보다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의 의식과 미술세계는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의문에 사로잡혀갔다.

당시 그가 내린 결론은 이타적인 가치로의 회귀였다. 상호존중과 배려의 실천이야말로 인간의 책무라고 믿었고, 그런 가치가 발현되었다고 여겼던 어린시절의 서정을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했다. 지난 40여년간 집중했던 ‘집’이라는 개념에 그의 철학이 묻어나는 ‘인간애’에 대한 가치가 서술되어 갔다.

“비릿한 바다내음 가득한 부산의 전통시장과 달동네에서 거칠지만 따뜻한 정을 느끼며 성장했어요. 그러나 세상이 발전하면서 점점 정이 사라져가고 있었죠. 이제는 다시 인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태경 개인전이 갤러리모나에서 12월 10일까지 열리고 있다. 전시에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연작 20여점이 걸렸다. 호박, 산과 벌판, 칸나, 술병과 도자 등의 대상들을 자신만의 미학적인 간결함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작들에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는데, 보다 본질화 됐다는 것이다. 대상의 사실성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핵심만 축출하려는 흔적이 화면 곳곳에 묻어났다.

“대상의 외적인 것보다 본질에 더 집중하려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특히 대상을 선과 면의 핵심적인 요소로만 표현한 지점에서 40여년의 내공이 묻어난다. “구체적인 형상보다 색감이나 선과 면적인 요소들에 집중했어요. 본질적인 것에 대한 형상화죠.” 정태경의 작업은 ‘집’으로 압축된다. 40여년 전 첫 주제는 ‘나는 집으로 간다’였다. 부산 출신이 그가 대구에서 겪은 문화적 차이에서 정체성 찾기를 시작했고, 그것을 집이라는 개념에 집약했다. 꽃이나 호박, 들판, 바다가 등장한 것은 성주 작업실 시기였다. 이 시기 작품의 제목도 ‘나의 집은 어디인가?’로 변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부산의 기억, 청년에서 성인으로 키워주었던 대구의 기억을 뒤로 하고 경북 성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자신의 삶을 “부표같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제 삶을 비롯해 인간의 삶이란 것이 방랑자가 아니겠습니까? 지구별에 태어나고, 부표처럼 살다, 다시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니까요.” 이 시기 그의 정체성 찾기는 절정을 달렸고, 향수는 더욱 짙어졌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무시로 접하자 추억 속 정서는 더욱 짙어졌고, 호박이나 꽃, 자연풍경 등의 형상으로 시각화됐다.

그의 세 번째 변혁기는 대구 방천시장 시대와 맞물린다. 방천시장으로 작업실을 옮기면서 탐구의 대상을 작가 자신에서 보편의 사람들로 확장했다. 도심 속에 자리한 방천시장은 여전히 투박한 옛 정취가 남아 있었다. 도시와 시골의 중간지대처럼 다가왔던 방천에서 그는 내적 안정을 찾았다. 그러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도 보다 관조적으로 변모했고, 방천 사람들의 소소한 삶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연작은 방천을 경험하고 방천에서 깨달은 사유의 결정체에 대한 시각적인 표현들이다.

그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견지되어 온 ‘집’은 공간적인 의미를 넘어선다. 자신을 비롯한 사람들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매개, 즉 그릇으로 기능한다. 그는 자신의 사상이나 삶의 궤적, 그리고 현대인의 내면을 담아내는 조형적인 요소로 집을 상정한다. 특히 인간적인 정서가 살아 숨 쉬었던 우리의 정서를 회복하자는 의미를 집에 투영한다.

공동체에 대한 헌신, 나눔과 배려의 가치에 대한 믿음은 동양 정신의 정수였다. 서양이 물질지향으로 흘렀다면, 동양은 가치지향이었다. 사색적인 삶을 지향했던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그의 의식을 지배했다. 특히나 근대화 이후 한국 사회가 서양적인 가치체계로 전화하자 그의 의식은 더욱 사색적인 동양성에 주목했다. 오방색 위주의 색채를 사용하는 배경에서도 한국적인 요소에 집중하는 그의 태도가 묻어난다.

이번 전시작에는 신천을 표현한 작품이 눈길을 끈다. 정체성 찾기의 정점처럼 다가오는 작품이다. 그가 “프랑스 세느강의 퐁네프 다리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방천의 수성교는 퐁네프보다 더 아름답다”고 했다. 속내는 서양이 아닌 우리 자신의 소중함과 위대함에 대한 표현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죠. 그것을 아는 것이 시작점인 것 같아요.” 서양적인 교육을 받았지만 한국인으로서의 본질을 지켜가는 것은 한국인으로서의 운명이라는 의미였다.

그의 작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돼 왔다. 회화와 드로잉이 그것. “드로잉을 완숙한 회화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했지만 그의 드로잉은 그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획득한다. 그는 드로잉을 동양회화의 일필휘지와 연결한다. 그는 자신의 드로잉을 ‘액션 페인팅’이라고 했다. 이는 그의 작업이 서양이 아닌 동양, 즉 자신을 뿌리고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정신성을 기운 생동하는 액션으로 담아냈던 선조들의 예술혼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회화에도 한국적인 요소들은 감지된다. 특히 보다 간결해진 선들의 구축이 도드라지는 이번 전시작들에서 한국화나 서예적인 선들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가 “한국인인 나의 내면 속에흐르는 선조들의 정신”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러한 화면 속 시각적 완결점 속에는 회화를 바라보는 그의 인식이 자리한다. 단숨에 그어 내리는 즉흥적인 선들에 산고의 시간과 내적 성찰의 시간들이 겹겹이 쌓는다. 이때 휴머니즘 회복에 대한 간절한 열망은 깊이를 더해간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며 폭발하지만 화면에는 정제된 대상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숙련된 기술의 결과라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이고 세상은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탐구하고 공부한 내적 성숙의 표현이겠죠.”

황인옥기자 hio@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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