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좋아서 하는 일
[문화칼럼] 좋아서 하는 일
  • 승인 2023.11.2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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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국 칼럼니스트, 전 대구문화예술회관장
일본의 ‘오타니 쇼헤이’가 미 프로야구 아메리칸리그 MVP, 그것도 만장일치로 뽑혔다고 한다. 게다가 작년에 이어 두해 연속 만장일치로 최우수선수에 뽑힌 첫 사례라고 하니 역시 지난봄의 2023WBC MVP에 이은 결과라, 투타에 걸친 최정상의 실력을 인정받은 사실상의 첫 사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WBC를 보며 우리는 씁쓸함과 함께 일본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 가운데 오타니가 있었고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자신만의 특별한 계획 하에 차근차근 실천해 나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한 것이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야구를 잘하는 오타니는 일본의 감독 ‘구리야마’가 있었기에 꿈을 활짝 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즐겁고 행복하게, 좋아서 하는 가운데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2023WBC 우승을 이끈 일본 감독 ‘구리야마’는 선수로서는 실패한 경우다. 20대 초반에 일본 야쿠르트에서 프로의 어려운 관문을 뚫고 선수생활을 시작했으니 출발은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5년부터 야구선수로는 치명적인 난치병을 앓게 되면서 선수생활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채 결국 1990년 29세에 꿈을 접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1999년, 홋카이도의 작은 마을 청년들이 그를 찾아왔다. 마을의 홍보 대사가 되어달라며…. 그 이유는 단 하나. 그의 이름이 마을이름과 같다는 것. 구리야마는 이때 마을 주민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못다 한,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 얘기했다.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꿈의 구장’과 같은 것을 만들고 싶다.

마을 사람들의 적극적 호응 속에 사비까지 보태 황무지를 정비하고 2002년 잔디가 깔린 야구장을 만들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누구나 언제나 이곳에서 야구와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구장에는 항상 글러브와 공을 비치해 놓았고 어린이를 위한 야구교실 그리고 동네 야구대회도 만들어 나갔다. 이렇게 야구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펼쳐가는 한편 야구해설가로도 활동했다. 그로부터 또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11년, 홋카이도의 프로야구팀 ‘닛폰햄 파이터스’ 구단에서 그를 찾아왔다. 구리야마를 팀의 감독으로 모시고자 함이었다. 그 이유는 ‘야구를 진짜 사랑하는 사람에게 구단을 맡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2년 후 2013년 마침내 오타니가 닛폰햄에 입단하게 됐다.

우리의 이승엽이 고교시절에 유망한 투수였다는 사실을 다 알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세분화되고 고도의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하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그래서 국민타자 이승엽이 탄생한 것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러나 투타를 겸하는 ‘이도류’를 원하는 오타니에게 구리야마 감독은 오히려 그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이는 야구를 진정 사랑하고 또한 인간을 존중하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구리야마 감독의 남다른 자세가 있었기에 오타니라는 새로운 야구 역사가 만들어 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1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이 두 사람은 마침내 2023WBC에서 국가대표 감독과 선수로 만나게 됐다.

그리고 우리가 지켜본 바와 같이 일본은 우승을 하였고 그 원동력에는 구리야마 감독이 추구하는 ‘아빠와 캐치볼하는 아들’이라는 따뜻한 야구철학으로 개성강한 최고의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것에 있다. 과거 이치로처럼 “30년간 야구 생각 못하게 해 주겠다”는 식의 교만함이 아닌 상대를 존중하는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이상적 야구를 보여 준 것이다. 이런 것들로 인하여 우승을 뛰어넘는 가치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고 그 중심에는 사랑하고 좋아서 하는 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추구하는 ‘즐기자!’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들어왔다. 단지 스포츠만이 아니다. 이는 모든 분야에 걸쳐 마찬가지다.

영국 태생의 작곡가이며 글 쓰는 작가 그리고 세계적 피아니스트인 ‘스티븐 허프’경은 이렇게 말했다. 연습을 하다보면 몇 주나 지나도 제자리걸음을 하는 것 같은 순간들을 맞이하게 된다. 연습량과 느는 것이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모퉁이를 돌게 되면 확 좋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음악이라는 것은 이렇기 때문에 언제나 믿음을 가지고 정진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적어도 1년 전부터 공연 때 할 곡을 미리 연습한다. 그래야 여유를 가지고 연습할 수 있으며 또한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한다.

예술가들은 아무리해도 성장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을 언제나 견뎌야 하며, 그런 나날을 수없이 견딘 후에야 어느 날 한 단계 뛰어오른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계단식 성장 곡선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피할 수 없는 고통이지만 이것은 오로지 좋아서 하는 가운데 극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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