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우의 줌 인 아웃] 은유로서의 로봇, 기계로서의 로봇
[백정우의 줌 인 아웃] 은유로서의 로봇, 기계로서의 로봇
  • 백정우
  • 승인 2023.11.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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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칼럼아이로봇
영화 ‘아이, 로봇’스틸컷.

과학자이자 소설가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1940년대 발표한 로봇공학 3원칙에 따르면 첫째,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둘째, 로봇은 인간에게 복종해야 한다. 셋째, 1.2원칙에 어긋나지 않는 한도에서 로봇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세 살 때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온 아시모프가 보고 자란 1930년대 브루클린은 이민자의 도시였다. 즉 아시모프의 로봇 이야기에는 이민자 정서가 투영되어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투덜거림 없이 수행하는 이민자들은 곧 그의 소설에서 로봇의 특징이 되었다는 것. 크라이슬러 빌딩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1930년대 이주노동자에 의해 지어졌다는 사실은 아시모프의 로봇이 은유임을 드러낸다. 그런데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충직한 이민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다면, 로봇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여 인간에게 반기를 든다면?

2004년 알렉스 프로야스가 연출한 ‘아이, 로봇’의 배경은 2035년 시카고다. 로봇이 상용화되고 자율주행이 본격화된 시대. 로봇은 돌봄을 하고, 연인이 되며, 산업현장에 투입된다. 분리수거함을 옮기는 일도 청소로봇의 몫이다. 로봇을 공급하는 USR사가 강조하는 문구는 ‘안전’이다. 로봇의 아버지 격인 과학자가 살해당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되고, 특별한 로봇 써니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는데. USR사 대표는 “인간끼리 죽이는 게 살인이죠. 만약 로봇이 사람을 죽였다면 그건 산업재해일 뿐”이라고 말한다. 진단 분석 후 해체수순을 밟으면 된다는 얘기다. 로봇인지심리학자도 거듭 주장한다. “로봇은 절대로 인간 못 해쳐요”

지난 8일 경남 고성군 파프리카 선별 작업장에서 농산물 박스를 옮기는 로봇이 사람을 박스로 인식해 집어 압착하면서 직원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작업장은 5년 전부터 로봇을 현장에 투입해 좋은 반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작업장은 5년 전에 로봇을 투입시켰고, ‘아이, 로봇’ 속 배경은 앞으로 12년 뒤의 일이다.

한국 사회는 로봇을 단순 기계가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예컨대 방송 매체를 통해 접하는 로봇 소식은 대체로 낭만적이었다. 2010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개발한 선생 로봇 잉키는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2015년 tvN에서 방영한 하이테크 시골예능 ‘할매네 로봇’은 시골 어르신의 말벗이 되어 외로움을 달래주는 손주 로봇의 가능성을 실험한다. 사람이 투입되기 힘든 극한 조건에서 임무수행을 위한 안전로봇도 개발 중이다. 인간과 함께 움직이며 수행하는 로봇들. 이면엔 사람에 대한 불신과 사람이 회피하거나 수행 불가능한 환경이 있다.

산업용 로봇이 인간의 자리에 위협이 된다면 선생 로봇과 돌봄 로봇과 안전 로봇은 인간과의 공존을 모색한다. 각종 산업 현장에 인공지능(AI)과 로봇이 도입되는 현실에서 정밀한 제어시스템을 만드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다. ‘아이, 로봇’의 원작자 아시모프도, 영화로 만든 프로야스도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거나 오작동할 때 인간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고성의 로봇 사고를 시대의 징후와 공포로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로봇을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하며 공존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백정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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