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반란 소재 ‘서울의 봄’, 차가운 독재 시대…왜 봄은 오지 못했나
12·12 군사반란 소재 ‘서울의 봄’, 차가운 독재 시대…왜 봄은 오지 못했나
  • 김민주
  • 승인 2023.11.23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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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사태 경험했던 김성수 감독
실화 바탕에 상상력 더해 재구성
반란군-진압군 9시간 사투 속
욕망 잠식된 인간군상 보여줘
잘 짜인 시나리오+배우 열연
긴 상영시간에도 몰입도 높아
씁쓸해도 외면할 수 없는 역사
모든 판단은 오롯이 관객 몫
서울의봄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추운 겨울을 더욱 매섭게 만들었던 독재의 시대. 따스한 봄을 맞길 기원했던 시민들의 소망은 무참히 짓밟혔다. 권력에 눈이 먼 일부 군인들로 인해 다시 차가운 독재의 시대가 시작됐고, 결국 서울의 봄은 오지 못했다.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이 살해된다. 비밀 지하 벙커에 모인 군인들은 박정희 대통령 서거 소식을 듣게 된다. 독재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권력의 공백은 서울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이 사태의 수사를 책임지는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전두광(황정민)은 자신의 사조직인 하나회를 이용해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 중정과 청와대 경호실을 점차 장악해간다.

육군참모총장 정상호(이성민)는 전두광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그의 정치적 싹을 자르려고 한다. 사명감이 투철한 군인 이태신(정우성)을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해 전두광을 경계하면서 그를 동해로 전출시킬 계획을 세운다. 이 소식을 들은 전두광은 제9보병 사단장이자 절친인 노태건(박해준)과 함께 군사 반란을 꾸민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광은 박 대통령 서거사건을 빌미로 정 총장을 강제 연행하고자 한다. 헌법을 위반한 상황 속에서 반란군들은 결국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전두광은 최전선의 전방부대를 서울 시내까지 불러들이며 결국 내전이 벌어질 위기에 놓였다. 권력에 눈먼 전두광의 반란군과 이에 맞선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을 비롯한 진압군 사이 일촉즉발의 9시간이 흐른다. 반란군과 진압군, 목숨을 건 두 세력의 팽팽한 대립으로 그날 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가 된다.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대부분의 사람이 알고 있는 1212군사반란을 소재로 삼고 있다. 등장인물의 이름 또한 모두 실존 인물에서 따왔다. 전두광은 전두환 사령관, 이태신은 장태완 소장, 노태건은 노태우 사단장, 정상호는 정승화 대장, 김준엽(김성균)은 김진기 헌병감, 최한규(정동환)는 최규하 대통령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김성수 감독은 실제로 12.12 사태를 경험했다고 한다. 사건 당일 육군참모총장의 한남공 공관에서 들려온 총성에 몸을 떤 사람 중 하나가 김 감독이다. 군사 반란이 전개된 9시간 동안의 자료가 제대로 남아 았지 않은 상황이지만 김성수 감독은 이 공백을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 영화적으로 재구성했다.

유명한 근현대사 사건을 영화화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관객의 대부분이 이미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를 끝까지 이끌고 갈 수 있는 힘은 그 결말에 이르는 과정을 얼마나 탄탄하게 구성하고 어떤 의미를 담아 전달하느냐에 있다. 12.12 군사 반란사건을 역사적으로 알고는 있겠지만 그 과정까지 세세히 알고 있는 관객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9시간의 치열했던 사투 속에서 욕망에 잠식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김 감독의 예민한 연출을 통해 보여준다.  

141분이라는 긴 상영시간동안 액션 블록버스터, 정치극, 전쟁 영화 등 여러 장르들이 오가지만 이 영화를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자면 심리극에 가깝다. 한 발의 총성보다 전화 통화를 통해 오가는 인물들의 심리전은 관객들의 손에 절로 땀을 쥐게 한다. 마치 현장에 함께 자리하고 있는 듯한 긴장감으로 영화를 보는 내내 숨이 턱턱 막히고 가슴이 무거워진다. 상영관 곳곳에서 터지는 한숨 속에는 영화 속 등장인물의 한 사람이 된 듯한 울분과 슬픔이 담겨 있다. 44년전 그날, 그 곳으로 관객을 데려다 놓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제대로 실행되는 순간이다. 그의 뚝심있는 연출은 단 한 번도 길을 잃지 않고 이렇게 결말까지 나아간다.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의 등장인물 중 대사가 있는 중요한 인물만 60여명이다. 영화는 친절하게 이들의 이름과 소속을 자막으로 알려주고, 지도와 도식 등을 이용해 관객들이 혼란을 겪지 않고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수시로 공수가 역전되는 등 시시각각 복잡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설명하는데도 자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대적 배경을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했다.

긴 상영시간에도 불구하고 높은 몰입감은 잘 짜인 시나리오와 연출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역사를 바탕으로 감독의 상상력이 빚어낸 존재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 속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쓰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히 현실의 인물들과 영화 속 인물들의 싱크로율보다는 배우들의 호연 덕분에 스크린 속의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만들어졌다.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군사 반란의 주동자인 전두광을 연기한 황정민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대중에게 익숙한 기존 모습을 뛰어넘어 새로운 연기의 세계를 펼치며 유명한 실존 인물을 연기함에도 캐릭터에 압도되지 않고 인물을 재창조해냈다. 대머리 분장까지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며 쉽지 않은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클로즈업된 황정민의 얼굴에서 입술의 떨림까지 조절하는 연기력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화장실 안에서 터뜨리는 광기 가득한 웃음은 소름이 돋는다.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강직한 이태신을 완성한 정우성 역시 인상적이다. 평소 단정한 이미지, 깊은 눈빛과 묵직한 톤이 꼿꼿한 이태신을 만나자 시너지 효과가 더해졌다. 관객에게 이 영화의 중심은 이태신인 것을 납득시키고, 동시에 그에게 자연스럽게 이입할 수 있도록 한다. 황정민과 정우성의 대립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건 이성민, 박해준, 김성균, 안내상, 김의성 등 많은 배우의 활약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개개인으로 충분한 존재감을 갖고 있는 이들이 영화 속에서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제 역할을 해내면서 관객들의 몰입을 이끈다. 여기에 이준혁과 정해인, 정만식은 특별출연으로 영화에 생기를 더했다.

‘서울의 봄’ 스틸 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제공

전두광을 비롯한 하나회로 대표되는 반란군, 이태신으로 대표되는 진압군을 비추는 빛의 대비도 눈여겨봐야 한다. 전두광을 비추는 저물어가는 석양 빛, 이태신을 비추는 백색광의 대비는 전두광의 반란이 그 순간에는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줬겠지만 영원하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말해주는 듯하다. 마치 그가 이태신을 뒤로 한 채 홀로 어두컴컴한 화장실에 가서야 실컷 웃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의 마지막, 하나회 무리는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어 술잔을 부딪힌다. 이태신, 정상호, 김준엽 등 반란군에 맞섰던 진압군들은 온몸에 부상을 입고 차가운 조사실에 갇혀있다. 하나회는 반란 성공을 자축하는 사진을 찍는다. 영화 속 사진은 실제 그날의 사진으로 다시 오버랩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아픈 역사를 담은 영화는 모든 판단을 오롯이 관객에게 맡긴다. 씁쓸해도 외면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근현대사는 현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생각할 많은 것을 남긴다.

김민주기자 kmj@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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