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인류의 역사 바꿀 ‘7번째 사과’ 탄생을 바라며…
[맛과 멋으로 읽는 세상] 인류의 역사 바꿀 ‘7번째 사과’ 탄생을 바라며…
  • 윤덕우
  • 승인 2023.11.26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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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대구 사과
사과, 인류 역사서 ‘처음·혁신’ 상징
인류 역사 바꾼 ‘6개의 위대한 사과’
아담과 이브 선악과·애플 등 꼽혀
삼성상회 시작이었던 이병철의 사과
글로벌 삼성 건설에 소중한 마중물
이 회장, 첫 사업 실패 후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삼성은 없었을지도 몰라
혁신적 기술·과감한 도전정신 갖춘
위대한 기업들이 많이 탄생되어
사과
사과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처음을 상징하거나 혁신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대구 인교동 삼성사회에서 사과를 팔았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불자였던 스티브 잡스가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도 오리건주의 사과농장이 이었다. 혁신의 아이콘 애플은 이미 그곳에서 잉태되고 있었다.

“아침은 왕처럼, 점심은 왕자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어라.”는 말이 있다. 잠자는 동안 우리 몸은 당분을 소비하기에 하루 활동에 필요한 충분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아침 식사는 늘 강조된다. 그러나 출근 준비에 바쁜 직장인이나 육아로 하루가 시작되는 맞벌이 부부들에게 있어 왕처럼 먹는 아침은 호사(豪奢)가 된다.

하지만 안 먹고 출근하자니 빈 속의 허전함을 달래기는 어렵다. 그래서 과일 한쪽이라도 먹고 출근하려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아침에 먹는 사과는 금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침을 생각하면 사과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사과는 다양한 영양분을 함유하고 있어 사과를 잘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말할 정도로 몸에 좋은 과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공복에 사과를 먹으면 유기산 성분이 위장의 활동을 촉진시켜 상쾌한 하루를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사과의 원산지는 유럽 발칸반도나 중앙아시아로 알려져 있는데 일설에 따르면 기원전 약 4000년 경부터 사과가 재배되었다고 하니 사과의 역사는 인류와 함께 한지 오래됐다. 이집트에서는 B.C1200~1300년경 나일강에서 사과가 재배됐고, 중국은 기원전을 포함하여 2000년이 넘는 사과 재배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사과 역사도 궁금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먹는 사과와 비슷한 재배종 사과는 조선 후기 병자호란 이후부터라고 한다.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우리나라는 원래 사과가 없었지만 효종의 사위인 정재륜이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사과를 가지에 접붙여 가져온 후 비로소 많이 퍼졌다”고 기술한 점을 보면 생각했던 것보다는 우리 민족이 사과를 즐겼던 역사는 길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고려 숙종(재위1095~1105)때 우리나라를 다녀간 송나라 사신인 손목이 저술한 <계림유사>에서는 능금에 관한 기록이 있다고 하니 동북아시아 토종 과일이었던 우리나라 능금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고 볼 수 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사과는 단순히 먹기만 하는 과일은 아니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나 동화에 소재로서 활용되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6개의 위대한 사과’라는 말이 생겨났다. 먼저 ‘아담과 이브의 사과’이다. 성경에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먹은 선악과가 사과라고 명시되지 않았지만 선악과를 사과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점에서 사과는 인류의 시작이 된 셈이다. 두 번째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파리스의 황금사과’이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만이 가질 수 있는 황금사과를 두고 3대 여신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이지만 파리스는 헤라와 아테나, 아프로디테 중 아프로디테를 선택하게 된다. 이에 분노한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에게 ‘트로이 전쟁’이란 혹독한 운명을 선사했다. 세 번째는 ‘빌헬름텔의 사과’이다. 함스부르크가의 억압에 저항했던 빌헬름텔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아들 머리에 놓여진 사과를 명중시킨 이야기는 스위스 독립운동의 발판이 되며 스위스의 건국신화가 됐다.

네 번째는 ‘뉴턴의 사과’이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중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은 서양사회의 사고방식과 제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다섯 번째는 ‘세잔의 사과’이다. 세잔은 사과만 110점을 그릴 정도로 사과 그림은 그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두 눈으로 실제로 보이는 세상을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했기에 세잔의 사과 그림을 현대미술의 시작이라고 보기도 한다. 여섯 번째는 ‘애플의 사과’이다. 한입 베어 먹은 사과를 보면 많은 사람들은 스티븐 잡스의 ‘애플’을 떠올릴 것이다. 인류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의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온 스티븐 잡스의 애플은 사과를 혁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회사 이름을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고 하니 사과는 분명 애플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도 사과를 연상하면 삼성의 시작이 된 ‘호암 이병철의 사과’를 들 수 있다. 1910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이병철은 20대 중반이 되자 사업에 뜻을 두게 된다. 아버지로부터 쌀 300섬을 지원받은 이병철은 서울, 부산, 평양 등을 돌며 사업을 구상했지만 대도시에서는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하고 고향 근처인 마산에서 정미소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정미소 사업이 순풍을 타게 되자 이병철은 자동차회사 매입을 통해 운수업을 시작하였고 은행 대출을 통해 김해와 마산 일대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1937년에는 약 1만섬의 수확이 가능한 토지의 대지주가 됐다. 그러나 그해 중일전쟁이 발생하자 은행 융자가 중지되고 땅값이 폭락하면서 빚 청산을 위해 자산을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첫 사업에 실패 후, 이병철은 사업을 청산하고 홀로 중국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중일전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상품이 중국에 넘쳐나고 항구나 역에서는 광물과 농산물들이 일본으로 반출을 위해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보게 된다. 신용을 중시하는 상거래 문화와 국내와는 스케일이 다른 엄청난 거래 규모에 이병철은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두 달 간의 중국여행을 통해 두 가지를 알게 된다. ‘중국에는 없는 것이 없다’라는 사실과 ‘중국에는 사과와 건어물이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병철은 중국에서 부족한 사과와 건어물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사업 후보지로는 진남포, 인천, 대구 등이 적당하다고 보았다. 진남포는 사과와 건어물이 모두 풍부하지만 아는 사람이 없다는 단점이 있었고, 인천은 물류 운송에는 편리하지만 사과 주산지로부터 멀리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반해 대구는 사과의 주산지이고 건어물은 가까운 포항에서 반입할 수 있었기에 대구는 필연적으로 삼성의 시작이 되었다. 1938년 3월 대구 인교동에 약 200평짜리 점포에서 시작된 삼성상회는 사과 등 청과류와 포항에서 반입되는 건어물을 만주와 중국으로 수출하는 것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제분과 제면사업을 하면서 단기간에 크게 성장했다. 거대한 중국 시장에 부족한 사과와 건어물을 타깃으로 했다는 점에서 삼성의 출발은 ‘블루오션’을 선점하겠다는 혁신적 경영에 입각한 것이었다. 이러한 혁신적 사고가 훗날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게 한 원동력이 됐던 것 같다. 어쩌면 세계 무대에서 삼성이 애플 등 세계의 유수기업들과 경쟁하는 모습을 이병철은 아주 오랜 전부터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삼성은 우리나라 GDP와 코스피지수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핵심이 될 만큼 그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끊임없이 블루오션을 찾고,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삼성의 성장을 통해 사업보국을 꿈꾸었던 이병철의 꿈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첫 사업 실패 후 이병철이 사업가의 꿈을 포기했다면, 그저 그런 다른 사업가들처럼 국내 시장에 안주하며 남들 다 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면 오늘날의 삼성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중국과 만주 시장의 ‘사과’라는 블루오션에 과감하게 뛰어들었고 삼시세끼 잘 먹는 것이 사업보국의 시작임을 알았기에 제당과 제면, 비료사업을 삼성그룹의 시작으로 삼았고,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반도체를 통해 글로벌 삼성의 미래를 꿈꾸었기에 이병철의 도전은 늘 혁신과 미래 사회에 대한 갈망에서 비롯됐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사과는 처음을 상징하거나 혁신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상회의 시작이었던 ‘이병철의 사과’는 글로벌 삼성을 만드는데 소중한 마중물이 됐다. 끊임없이 블루오션을 찾고, 혁신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고 궁극적으로 기업의 성공을 통해 사업보국을 꿈꾸는 자는 모두 이병철의 후손이 아니겠는가? 작은 배포로 레드오션에 안주하고 부동산 장사나 나랏돈에 의지하는 장사꾼들이나 업자가 아닌 혁신적 기술과 탁월한 능력, 그리고 과감한 도전정신이 있는 기업가들이 많이 탄생하여 인류의 역사를 바꾼 ‘7번째 위대한 사과’가 대한민국에서 탄생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것이 삼성을 만든 이병철이 그렇게 간절히 꿈꾸던 사업보국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이상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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