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아침] 끼리 끼리
[달구벌아침] 끼리 끼리
  • 승인 2023.11.2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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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BDC심리연구소 소장

옛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후임이 나를 찾아왔다. 그 와의 만남은 퇴사 후 15년 만에 만남이었다. 같이 일할 때 참 친했던 사이였는데 왜 이렇게 서로 만나지 못했을까? 긴 시간이 흐르고 마주 앉아서 이야기하다 보니 '한 사람' 때문이었다. 그를 편의상 A라고 하겠다. 찾아온 후임은 물론이고, 많은 직장동료가 A를 싫어했다. 사실 나도 그를 좋아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비친 모습은 우리 둘이 엄청 친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A가 직장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퇴사하고도 늘 나를 찾아오고, 사람들을 만나면 나와 친하다는 것을 어필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A와 나는 엄청 친한 사이고, A의 생각, 행동과 습관 등이 나와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를 15년 만에 찾아온 후임도 그런 이유에서 나를 만나러 오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나와 그의 생각이 다르고, 나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연히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듣게 되고 난 뒤 내 생각이 났고,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졌다는 것이었다. 여전히 전 직장의 많은 사람들은 자신처럼 오해하고 있었고, 지금도 오해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모두 자신과 닮은 것과 함께 어울린다. 주위에 만나는 사람들을 내가 만나고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이 곧 나로서 평가받는다. 모두 '끼리끼리' 만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만나는 사람이 곧 내 얼굴이 된다. 난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함께하면 편하고 나와 닮은 사람들하고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평가는 나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사람에 의해 굳어져 가고 있었다. 즉, 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나를 '그 사람과 같다'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나를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조차도 나란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통해서 알게 된 내 모습이 아니라 내가 아닌 그 사람들을 통해서 나의 모습을 판단하기 시작했고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그런 사람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 있었다.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변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미 사람들의 머리에 나라는 사람은 '그런 사람'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나는 여태껏 만나고 싶은 사람보다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그런 만남을 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과 더 자주 만나고, 나의 결에 맞는, 나와 비슷한 내 모습 같은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야겠다. 이제 그렇게 살려고 한다. 나와 결이 맞지도 않은 그런 사람들을 굳이 가까이하면서 그들의 이미지가 내 이미지가 되도록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한참 후에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나의 직업 때문이기도 했고, 나의 고집 때문이었다. 어려운 사람들과 힘든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관심이 갔고 그들 '곁에 있어야 한다'라는 나름의 의무감 같은 고집이 나를 그들 곁에 있게 했었다. 그래서 친구가 없는 사람들,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머무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찾으면 거부하지 않았고, 내게 안 좋은 영향이 와도 속된 말로 내치지 않았고, 나를 힘들게 해도 그들이 나를 찾아오면 다시 받아주었다.

돌아보면 몇몇 얼굴이 떠오른다. 나를 걱정하는 주위 사람은 '그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 '당신의 이미지가 나빠진다'라고 충고했었지만 나는 잘 듣지 않았다. 그가 나를 찾아오고, 나를 필요로 하면 거절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소명이고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사람들이 다니면서 나의 이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 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볼 때는 그 사람의 모습이 그가 만나고 있는 나의 모습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나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나는 곧 내가 만난 그 사람의 모습이었다. 오해하게 한 것도 내 잘못이 크다.

친구는 내 얼굴을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내 주위에 나와 비슷한 사람을 둬야 한다.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렇게 해야 사람들에게 '있는 그대로 나의 모습'을 만나게 할 수 있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려야 한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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